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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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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대작의 목적은 대화이지 술 그 자체는 아니다- 정이식(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6-02-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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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인 설을 전후로 소주 소비량이 늘었다. 일등공신은 단연 알코올 도수의 낮음이다. 소주는 1924년 알코올 함유량 35도로 세상에 나왔지만 1973년 25도로 도수를 내리며 대중주가 되었다. 1996년 23도로 도수가 내려오더니 2001년엔 22도, 2003년엔 21도. 2007년엔 19도, 2014년 18도를 거쳐 2016년인 지금은 16도 소주가 주종을 이룬다. 낮은 도수의 대표적인 술을 찾아보면, 봄봄 16.7도, 처음처럼 16.8도, 좋은데이 16.9도, 진로의 쏘달도 16.9도다. 참고로 북한의 대표적인 술 평양 소주는 23도다.

    소주 회사의 도수 낮추기 경쟁은 어디까지 갈까? 16도를 내려갈 수 없다. 16도 이하는 소주 명칭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도 이상의 소주는 또 광고도 할 수 없다. 16도 소주의 얄팍한 상술이 엿보인다. 조선조 세종은 문무백관들이 술을 많이 마시자 건강을 위한다며 계주교서를 내렸다. 하루 석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 했다. 머리 좋은 주당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다. 왕명은 지키되 술은 마셔야 하고, 잔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대포와 왕대포는 그때가 시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선조들은 술을 마셔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술자리에 앉으면 잔 하나로 윗사람부터 차례로 돌렸다. 첫 잔은 거절 없이 마셨다. 이렇게 한 바퀴 술잔이 도는 것을 한 순배라 하였다. 두 순배부터는 주량이 약한 사람은 엉덩이만 살짝 들었다가 놓았다. 당연히 잔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갔다. 똑같이 취하기에 술주정이 없었다. 주정이란 취함이 달라야 일어난다. “대작의 목적은 대화이지 술 그 자체는 아니다. 술 그 자체라면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술맛 떨어진다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떨어지는 것은 함께 마시는 사람의 맛이지 술맛은 절대 아니다.” 도올 김용옥의 말이다. 그래서 술잔치는 말잔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래의 술자리는 도수 낮은 소주로 인하여 말잔치가 아닌 술잔치로 변해 가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며 도수를 내린다는 것이 오히려 전 국민을 술꾼으로 몰아 가고 있는 것이다.

    소주를 낭만으로 표현하는 시인을 만나본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노동의 새벽-박노해),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소주병-공광규), ‘투명하게 출렁이는 소주는 너처럼 차갑게 내 안으로 들어와 조그만 불씨로 모닥불을 피운다.’(소주에 관한 짧은 詩-김성수), ‘한 병의 소주를 앞에 두고 평생을 부어내어도 다 쏟아지지 않을 허기진 인생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소주 한 병과 노숙자-황라현), ‘시인들은 언제 소주를 마시냐고 묻데요. 당신은 시를 쓸 가능성이 있다 했더니 시는 소주보다 싱겁다며 다음에 올 땐 시집은 그만두고 소주만 가지고 오라 하데요.’(태하 등대지기와 소주-이생진). 꽃은 반만 피는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하는 것이 좋다.(채근담). 술이 머리에 미치기 이전까지만 마셔라.(인자).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나가버린다.(G.허버트). 술이 만들어낸 우정은 술과 같이 하룻밤밖에 소용이 없다.( F.로가우).

    1일 1000만 병의 소주를 마시는 대한민국 국민. 한 해 36억 병의 알코올로 속을 데우는 위대한 이 땅의 주당들. 거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정이식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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