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경남시론] 공녀, 환향녀,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까지- 김재수(영화감독)

  • 기사입력 : 2016-02-22 07:00:00
  •   
  • 메인이미지

    1991년 8월 광복절 즈음에 김학순 할머니는 긴 한숨과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내 인생은 끝났다’며 자신이 일본제국의 위안부였음을 실명으로 세상 밖에 던졌다. 그 후 1992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집회가 시작됐고, 변영주 감독의 세미다큐멘터리 영화 <낮은목소리/1995년>를 통해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겪은 파란만장을 창자를 끊는 비통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 호흡의 가치를 대다수 국민들은 대략 다음 7가지 형식(일본군 ‘위안부’범죄 인정/진실 규명/국회결의 사죄/법적 배상/역사교과서 기록/위령탑과 사료관 건립/책임자 처벌)으로 동의했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내는 물론 전 지구인을 상대로 일본의 범정부적으로 자행된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고 그 성과가 조금씩 가시화되는 와중에 뜬금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국 총리의 십몇 분간의 전화통화와 단돈 10억엔 남짓으로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나라의 비애라면 ‘잊혀진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역사적 교훈이 새삼스럽다.

    <공녀>는 원나라 부마국으로 속국이 된 고려가 원나라에 투항한 송(宋)나라 한족 군인들에게 배우자를 마련해 준다는 귀순병 위무 회유책이었지만 실상은 고려여인에 대한 야욕충족책과 좀처럼 항복하려 하지 않았던 고려인의 부녀자들을 강탈함으로써 고려의 반몽의지를 무기력하게 하려던 술책이었다. 이 <공녀>는 새나라 조선이 개국하고도 약 130년 동안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명나라 남자들의 성노예로 조선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보내진 이 땅의 여인들이었다.

    <환향녀>는 또 어떤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냥년’의 어원인 <환향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묘 병자 양 호란으로 정조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을 일컬음이다. 환향녀들은 정조를 잃었다는 이유로 가정과 남편으로부터 배척당하다가 결국 들병이가 돼 뭇 남성들의 육욕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 특히 양 호란으로 생긴 <환향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국왕 인조가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친명정책을 고집하다가 되놈들한테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례’라는 치욕을 당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이었다.

    <위안부>는 일본제국이 강제로 전쟁터의 성노예로 파견한 여성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반인륜적 행위보다 당시 식민지조선의 이광수, 김활란 등 친일파들의 악랄한 회유와 협박이 더 천인공노할 짓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특히 김활란과 황신덕(당시 중앙여고 교장) 등은 눈물로 호소해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인물들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교수는 “일제 식민지 시절의 여성 단체들이 조선 여성들에게 가장 악한 일을 했다”라고 정의했다.

    동족을 전쟁터에 성노예로 내몰았던 친일행위자들의 역사적 심판이 먼저 이뤄지고 일본의 단죄를 묻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뼛속까지 친일이었던 일본군 장교 출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딸이 대통령도 하고, 명백한 친일행위자의 아들이 집권당 대표를 할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번 10억엔 ‘최종적 및 불가역적’ 대일본 위안부 합의는 언필칭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양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모 할머니가, 서울에서 김경순 할머니가 또 돌아가셨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8명 중 생존자는 44명으로 줄었다. 한국의 두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돌며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명예회복 및 피해배상을 요구하며 세계인을 상대로 1억명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벌이고 있다. 대한국민이라면 마땅히 참여해야 될 것이다.

    김재수 (영화감독)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