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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기자] 다시쓰는 7번 국도 (1) 경주/울 준비는 되어 있다

  • 기사입력 : 2016-02-23 13: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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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부 김언진
     
    나는 최근 이별을 겪었다. 내 모든 것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만큼 열렬히 사랑했고 또 사랑했지만 그와 나는 결국 헤어졌다.

    우리가 어떻게 연인이 됐고,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그는 내 곁에 없고, 그와 나는 더 이상 '우리'라는 단어로 묶을 수 없다.

    한 때는 그가 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부조차 쉽게 물을 수 없게 된 지금에서야 언제든 쉽게 깨어지고 끊어질 수 있었던 연약한 인연이었음을 깨달았지만.

    지금 나는 이별의 후폭풍 한가운데 있다. 고요했다가 요동치고 또 언제그랬냐는듯 사그라드는 감정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도치는 감정선의 주기도 길어지고 있고 진폭도 점차 낮아지고 있으니 가히 희망적이다. 클리셰이긴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또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

    설 당일 유경 선배의 집 앞에 셋이 모여 여행 경로를 정할 때 '경주'라는 지명이 거론된 순간부터 나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비록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두 글자였지만 가능했다면 다시 모조리 주워담고 싶었다. '괜찮다. 다 괜찮을거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내비게이션 최근목적지 목록에 있던 '스타벅스 경주보문호수점'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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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 추억을 다시 들춰보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해야하는 일이었고, 나는 그럭저럭 잘 해냈다.

    사실 경주는 불과 몇 주 전 옛 연인인 그와 헤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아직도 선혈이 맺혀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직면해야 하는 곳이다.

    나는 그와 함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여행을 갔었다. 그러나 정작 뜨는 '해' 대신 '별'만 보고 돌아왔다. 그것은 바로 이별. 그렇다. 'I WAS A CAR'(나는 차였다)

    이번 7번국도 여행의 첫 경유지로 경주를 택하고부터 나는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애써 지우려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그냥 내버려뒀다. 그래서 쓴다.

    운명이라 여겼던 상대와 행복한 날들을 보내다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이별에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헤어짐을 이야기 하는 그의 눈빛은 나를 늘 따뜻하게 바라보던 이전의 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내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그 차가운 뒷모습도 생전 처음이었다. 그의 소매를 조금 더 붙들고 싶었지만 그의 곁을 둘러싼 한기(寒氣)에 내 손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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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함께 마지막으로 걸었던 안압지. 그는 경치 구경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내가 행여 감기라도 들까 옷 매무새를 다듬어주고 내 언 손을 녹이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와 나는 '영혼의 결'이 많이 닮았다. 그는 내게 '너를 보고 있으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했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치 그가 성장하며 겪어온 시련과 고난, 그리고 행복의 사건들로 점철된 삶의 궤적을 만들며 걷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는 사이 그가 내어놓은 길을 그대로 뒤따라 걷던 나를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밑바닥까지 그는 이미 훤히 꿰뚫고 있었고, 모든 일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에게 의지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연인 외에도 수많은 역할을 쥐어준 탓에 그와의 이별로 열댓명쯤을 한꺼번에 잃었다. 고작 한 사람이 내 손을 놓았을뿐인데, 나는 온 세상에게 버려졌다.

    이별 후 나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경쟁하듯 망가졌다. 몸에 있는 수분을 모두 말릴 기세로 눈물을 쏟았고, 애써 씹어 삼킨 음식을 도로 게워냈다. 하루에도 수백번 완전히 붕괴될 것만같은 위기가 왔다. 심지어 어느 날은 취재를 마치고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온 삼십분가량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도 했다. 너무 무서웠다. 혼자서도 뭐든 잘해내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금치산자(禁治産者)가 됐다. 그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가 있는 곳에 무작정 찾아가 기다리기도 했고, 다시 나를 봐달라고 애원도 했다.(물론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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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우리는 나란히 서서 아무런 말도 없이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그를 잊기 위해 그를 악인(惡人)으로 둔갑시키고, 그런 남자에게 빠졌던 내 자신을 원망했다. 때로는 그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셈 쳤다. 하지만 전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와 함께 보낸 아름다웠던 시간을 훼손시킨다고 해서 이별의 아픔이 덜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연애의 전리품인 '함께했던 추억'만 색이 바랬다. 연애는 끝났지만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 속 어디에나 있는 '행복했던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보문호수를 바라보며 나는 인정했다. 내게서 그의 모든 흔적을 완전히 지워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 이후부터 나는 내 감정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는데 더욱 집중했다.(일전에 유경선배와 슬기선배가 해준 조언이기도 했다) 울고 싶을 땐 엉엉 소리를 내며 원 없이 울었고, 그가 보고싶을 땐 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썼다.(나는 카카오톡에 있는 '나와의 채팅'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별한 이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괜히 술 취한 새벽에 '자니?' 이런거 보내서 흑역사 만들지 마시고.) 어느 시점이 지나자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 수면위로 떠오른 것처럼 나는 드디어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날선 추억에 여전히 손을 베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예전보다는 마음이 훨씬 동글동글해졌다. 서툰 내가 그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는 것도 생각해냈다.(이제는 다음 연인을 위해 갈무리만 잘 해두면 된다) 이제는 오랜 시간 좋은 친구였던 그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오빠.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어. 잘 지내고 또 잘 지내지마.'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문화부 이슬기
     
    여행을 떠나기 전날 본 영화 '캐롤'에서 주인공 '캐롤'은 사랑하는 '테레즈'에게 말한다. '당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사람같아요.' 이 영화는 서로를 알아본 캐롤과 테레즈가 뉴욕에서 미 서부로 긴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영화는 운명적인 단 한 순간,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걸 일러준다. 일부러 여행가는 날에 맞춰서 이 영화를 본 것도 아니었는데 내 연애관을 지지해주는 영화를 보고 나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여행이 형체도 알 수 없는 복잡한 고민들을 해소해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메인이미지영화 '캐롤'의 한 장면. 왼쪽이 '테레즈', 오른쪽이 캐롤. 딸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왔다가 캐롤과 테레즈는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케이트 블란쳇 언니같은 분위기며 외모면 나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해요 언니.
     
    영화 대사로 번지르하게 시작해봤지만 결국엔 설날 '땡땡이'를 쳤다는 이야기다. 제사를 다 지내지 않고 설날 당일 오전, 영화 속 미국횡단 하는 마냥 짐을 싸들고 창원을 출발해 북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고백하자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설날 연휴 때 친구와 홍콩여행을 떠난 이력이 있다. 한국과 중국 본토인들이 죄다 몰려내려오는 때 왜 가냐는 주변의 우려들을 물리치고, 보란듯이 끝내주는 연휴를 보내고 왔다.(최근 페북이 '과거의 오늘'을 친절히 알려줘서 상기하게 됐다. 사진 속 활기 넘치는 얼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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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밤거리. 홍콩 밤거리를 쏘다니며 놀았던 지난해 구정, 란 콰이 퐁에서. 조상님들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올해도 일찌감치 유경 선배, 언진이와 설 연휴 때 어디론가 떠날 것이라 미리부터 못박아 둔 내게 셀프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29살은 존재 자체로 암울한가, 그렇게 열렬히 응답하라 외치는 1988년에 태어난 올림픽둥인데. (지드래곤도 88년생임을 강조하고 싶다.)

    2016년이 되자마자 새해엔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이가 뭐 중요한가'하고 생각하다가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 성격도 못 되는지라 무언가 목을 감싸오는 듯한 갑갑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대답할 때 스물을 빼고 '올해 아홉입니다'고 하는 건지도.

    여행 날 아침 양심상 아침 제사는 지내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찾아 뵌 친척들도 어김없이 물어봐주셨다. '벌써 슬기가 29살이가?'. 간간히 숙모, 고모들이 '아직 창창하네', '요새 누가 시집 벌써가냐'는 말들을 건네주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먼저 들었던 말로 인해 공허해졌다. 친척들을 둘러봤다. 줄줄이 늘어선 사촌, 육촌 동생들. 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 하나 결혼이 급한 사람은 없었다. 외가도 마찬가지다. '휴, 첫째의 운명'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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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기사 참조.
    메인이미지연합뉴스 기사 참조.

    여행의 시작. 운전대를 잡은 언진이는 네비게이션을 살핀 뒤 경주를 가로질러 간 뒤 7번 국도를 타자고 했다. 떠나는 것이면 어디로든 상관이 없었으니까 좋았다. 가는 길은 수다와 정적을 번갈아가며 채웠다. 우리 셋의 사정을 담은 1박 2일의 여행기를 써보자는 생각에 다들 들떴다. 그럼 이 여행을 출장으로 봐야 하냐며 고개를 갸웃대면서 셋은 제목을 정해보기로 했다.

    건드리면 쏟아질 듯한 물기 머금은 소설 제목들이 튀어나왔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착한 여자', '우리는 빗방울처럼 혼자였다' 등등. 그러다 우리 여행 주제랑 맞아떨어져서 갖고 온 김연수 소설가의 '7번 국도'를 들먹였다. 김연수 소설가를 좋아하지만 이 책은 영 읽히지 않는다, 혹시나 여길 여행하면 읽힐까 해서 가져왔다고 운을 뗐더니 유경 선배가 말했다. '나도 그렇더라, 우리가 더 재밌게 써볼까?' 그래서 여행기의 제목은 '다시 쓰는 7번 국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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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소설가의 장편소설 '7번 국도'. 이번에도 결국 읽지 못했다. 오해마시라, 나는 김연수 소설가를 좋아하는 팬이다. (사인도 여럿 있다.)
     
    제목을 논하는 사이 초록색 네모에 쓰인 7번과 곧 경주라는 안내가 보였다. 톨게이트와 주유소 지붕에까지 기와를 얹은 경주였다. 수백마리는 돼 보이는 까마귀떼가 우리를 반겼(?)다. 전선과 나무가 내려앉을 것 같이 떼지어 몰려있었다. 불길한 건지 반기는 건지 헷갈려하는 사이 보문호수에 당도했다.

    탁 트인 보문호수가 아름다워 볕을 쬐며 호숫가를 걸었다. 호수는 얼고 녹기를 반복해서 오리배가 움직이지 못했고, 표면은 이리저리 금가 있었다.

    정확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끼리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너무 춥다고, 어느정도까지만 걷자고. 호수의 규모가 크다고, 호숫가에 있는 콜로세움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들. 그런 사소한 이야기에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좋았다.(혹시 안 좋았나?) 반쯤 정신을 놓고 걸어, 약을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속리산 산행 때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그만큼 한없이 느슨하고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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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와 유경. 천천히 호숫가를 걸었다. 다 돌았으면 여행을 못할 뻔했다. 뒷태가 닮은 두 사람을 언진 기자가 포착해줬다.

    운명을 믿는다는 말은 요즘 세상에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말, 순진하다는 말로 자주 비하된다. 그럴 때마다 울컥해 대거리를 해보다가도 이내 포기해버리고 비하를 견뎌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기도 한다. 저들 말이 맞는 것 아니냐고, 솔직해지자고. 현실의 선택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어서 운명에 의지하는 쪽으로 도망친 것 아니냐고, 자신을 인정하라는 소리도 들린다. 하나의 나 안에서 두 마음이 서로를 찌른다. 나는 아직 어떤 쪽에도 완전한 편을 들지 못했다.
     
    칼로 물베기같이 마음은 쉬이 재단되지 않고 물컹, 찔렸다 만다. 금간 자국이 생겼다 사라진다. 비유하자면 달걀 흰자같은 것이 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건드려보아도 만지고 있는 건지 아닌지 알기 어렵고, 미끄덩거리며 도무지 다음 행방을 가늠할 수 없는 성질을 지녔다. 수시로 변하는 질량과 무게, 그렇다고 많은 영양을 가지지도 못한 것이 질척인다. 언제든 흘러내릴 준비가 돼 있는 마음이 비릿하게 출렁거리고 있다. 발끝까지 내려갔다 다시 울렁이며 올라오고, 자잘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이거 참, '내 마음이 단백질 덩어리요' 하고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설명이 당황스럽다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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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 흰자말고는 설명할 물질이 없다. 나도 비슷하다, 유사한 물질이 생각난다 하시면 제보주시라.

    내 연애의 총 결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고 녹기를 되풀이해서 호수에는 금이 남았다면, 운명이라 믿었다 말기를 되풀이한 내겐 흰자같은 마음이 남았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해 본 적은 있지만, 마음의 움직임이 어떠한지는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부끄러웠다.

    마음이 달걀흰자로 채워졌다는 소리를 하고 다니면 어디 양계장 홍보하러 왔냐, 마음이 노른자 빼고 다이어트 하냐는 소리만 듣지 않을까해서였다. 다만 나와같은 형상을 갖고 있는 마음이 어딘가는 있겠거니 하고 짐작해왔다. 혼자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건 너무 외로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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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오다 걸림. 내가 오기를 기다리다 기습적으로 찍은 사진. 커피 얻으러 온 유령처럼 찍혔다.
     
    금간 호수 바람이 차서 조금 돌다 말았다. 셋은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비슷했다. 언진이가 말한 것처럼 키도, 개혼의 운명도, 맏이인 것도, 사회부 경험도 겹쳐서일까. 비슷했는지 혹은 나를 배려해 비슷해주려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내 앞에서 걸어가는 둘은 말에 공감해주었고,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 그 아래에까지 닿았다는 걸 느꼈다.

    그들의 슬픔으로 내 슬픔을 넘겨서 나는 줄곧 미안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아 고마웠다. 내 비릿한 흰자 마음이 이상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줬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믿어주는 것, 그러니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걸 선배와 언진이로부터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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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하트. 흰자같다는 얼토당토 않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들, 우리 셋에게 운명의 사랑이 찾아오기를. 그 사랑을 쟁취할 용기를 내기를.
     
    추운 날씨에도 햇빛이 좋아 그림자가 호수 옆으로 길게 졌다. 150cm대에 머무는 셋의 키가 늘어났다. 이때다 싶어 그림자로 하트를 날렸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캐롤과 테레즈는 서로 한 걸음씩 다가서는 용기를 내고, 일정한 용기가 맞닿았을 때 사랑이 이뤄진다는 걸 보여줬다. 영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간 여행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번 여행은 적어도 운명의 상대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떠난 길이다. 천년 고도 경주에서 빈다. 우리가 그림자로 만든 하트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기를, 그러기 위해 일정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방송인터넷부 김유경
     
    지난달 16일 오후. 나는 사보이호텔 예식장에서 부케를 받았다.
    아이보리색 리본이 달린 장미 부케였는데, 공중을 힘차게 날아 포물선을 그리더니 내 품으로 와락 떨어졌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냐고? 글쎄.
     
    나는 신랑 측 하객이었고, 심지어 신부의 얼굴도 신부대기실에서 처음봤다. 나는 그녀의 친구도 친척도 뭣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그 부케의 주인공은 '김유경'이 아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차여차한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결혼식 전날 밤 졸지에 나는 '부케녀'로 낙점 됐다.
    그리고 온몸을 날려 그것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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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리를 빌어 김종우, 천소영 씨의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나는 올해로 서른둘을 맞이했다.
    앞서 글을 쓴 두 후배가 이런저런 앓는 소리를 한다지만, 이것들아, 지금 장난하냐?
    너희는 20대잖니. 언니는 서른도 아니고 서른하나도 아니고 서른둘이란다.
    노산의 기준은 만 서른다섯. 나는 그리 넉넉치 않은 유예기간을 둔, 상당히 덜 싱싱한 몸뚱어리를 가진 여자가 됐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어떠한가?
    뱃속의 아이를 혼수 삼아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에게 '훌륭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다소 뻔뻔한 아버지가,
    '누구누구 집 아들이 혼기가 꽉 찼더라'는 소식에 토끼처럼 귀가 쫑긋해지는 예민한 청각을 지닌 어머니가 됐다.
    점잖고 음전하기로 창원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었는데… 불효녀는 웁니다.
     
    설날 아침, 친지들은 물었다.
    '올해 네 나이가 몇이고?' '청춘사업은 잘 되가나?' '올해 안에 국수 먹을 수 있나?'
    허허참. 그게 저도 잘 모르겠…
     
    한때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나갔다.
    순수하게 교감하였으나,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으나, 멀어져갔다.
    서로의 종착역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조금씩 나눠가진 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7번 국도를 탄 뒤 쓰는 여행기라지만, 나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매우 사적이고 내밀한 자기고백적 글을 쓰려한다.
    웬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떠나보낼 것들에 대한 깊은 애도와 다가올 것들에 대한 진심어린 환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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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보문호는 수심이 깊어 위험하오니 입수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미리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입수를 금할수 있을까. 언제든 뒤돌아설 만큼만 정을 줄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진 못할 거다. 그래서 늘 우리는 사랑에, 사람에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결혼식에 다녀온 날 밤, 투명한 꽃병에 부케를 꽂아두고 입술모양으로 살짝 벌어진 요염한 꽃봉오리를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꽝꽝 언 보문호를 돌며 그날의 부케를 떠올린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케를 받고 반년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오랜시간 노처녀로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월 중순에 부케를 받았고, 지금은 꽃피는 봄을 앞둔 2월 말이다. 분명 시간은 함부로 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바통은 무사히 넘겨받았으나 정작 달릴 트랙이 없는 형국이랄까.
    그래서 기분이 어떻냐고? 글쎄.
     
    분명해진 게 하나 있긴 하다.
    지난 31년의 세월을 잉크삼아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살뜰하게 챙겨온 2016년의 결심이라는 것.
    당장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할 트랙은 바로 현재, 여기라는 것.
     
    매일 온몸을 날려 부케를 받는 심정으로, 열심히 써보겠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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