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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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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고흐의 흔적'을 따라서… 프랑스 아를

  • 기사입력 : 2016-02-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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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창시절 친구들이 서태지와 HOT에 열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시큰둥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했다. 화가 고흐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불행했던 삶을 아파하니 내 사랑과 동정을 보태기가 싫었다. 처음 고흐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미술시간. 그와 나의 일방적인 관계는 시험지에서 그림과 제목만 일치시키면 끝이었다.
     
    미술전공자도 아닌 내가 고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접한 한 권의 책 덕분이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았던 668통의 편지들로 가득찬 책. 그 책 속에서 만난 고흐는 자신과의 신념과 싸우며 가난과 고독,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진솔하고 절절한 그의 편지에 빠져들어 치열했던 그의 삶과 그림들은 나를 프랑스 ‘아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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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아를의 관광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꼬마기차.

    준비없이 여행을 다니는 편이라 아를에 도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녁 늦게 도착해 아를에서 30분 넘게 떨어진 하나뿐인 호스텔까지 가는 버스가 끊겨 버린 거다. 20㎏이 넘는 배낭을 메고 1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았지만 배낭여행자인 내가 머물기에는 너무 값비싼 호텔들뿐이었다. 막막함에 배낭을 던져놓고 론강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석양, 그 눈부심 때문인지 숙소를 찾느라 힘들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주저앉은 내게 다가온 프랑스 할아버지. 그는 영어를 못했고, 나는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본능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내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여인숙을 소개해주셨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복도는 배낭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았지만 묵을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도, 어두침침한 조명도, 론강이 보이는 창문도, 어딘가 선술집 여인의 분위기를 풍기던 주인 아주머니도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버렸다. 가난했던 고흐도 이런 여인숙을 떠돌며 아를에서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하니 무섭게만 느껴지던 여인숙이 낭만적인 숙소처럼 느껴졌다.

    ‘아를’은 천재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0개월 동안 요양차 있었던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다. 그가 그린 그림들의 실제 배경이 된 곳들을 찾아다니며 고독했던 영혼 그러나 최소한 프로방스에서만은 행복했던 천재화가 ‘고흐’를 떠올리는 여행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날이 밝은 후 마을을 둘러보니 지난밤 어둠 속에서 지나쳤던 모든 곳들이 고흐와 연관이 있는 곳임을 알게 됐다.
     
    역을 나와 마을 초입에 있던 건물이 바로 고흐가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하고 벽을 노란색으로 칠했다던 ‘고흐의 노란 집’이 있던 곳이였다. 고흐는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노란 집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작업을 했다. 안타깝게도 그 노란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없어져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 중 실제 그림과는 다르게 남아 있던 곳이었다. 거리에 ‘고흐의 노란집’ 이젤이 없었다면 아마 찾지 못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유일하게 실제 그림과 일치하는 구름다리만이 이곳이 과거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곳임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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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와 그 배경.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작품들로 만들어진 엽서세트를 구입했다. 보물찾기 게임처럼 엽서 속 고흐의 그림을 보며 장소를 찾아 나섰다.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 라는 문화센터가 된 곳은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자 마을사람들이 고흐를 정신병자라고 탄원해 입원했던 요양소다. 뜨거운 아를의 태양 아래 도개교를 찾아갔던 즐거운 1시간. 내가 걸은 이 길을 고흐도 걸어서 갔던 걸까? 고흐를 떠올리며 엽서 속 도개교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호젓한 시골 길가 곳곳에는 고흐 그림의 주된 소제 중의 하나였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껑충하게 서 있다. ‘아를의 빨래하는 여인들(The Langlois Bridge at Arles with Women Washing)’을 비롯해 도개교가 배경이 된 작품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3점이나 된다. 고흐의 작품 속 도개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됐고 지금의 것은 남아 있던 다리를 복원한 것이다. 마을에서 2㎞떨어진 도개교까지 가는 길이 남프랑스 뜨거운 태양 덕분에 다소 힘들 수 있지만 아를에 간다면 꼭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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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를 병원의 정원’과 그 배경.


    나를 아를로 이끌었던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는 ‘카페 반 고흐’가 되어 강렬한 노란색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찾기 위해 이틀간 헤매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거짓말처럼 광장에서 발견했던 첫날 밤을 생각하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른 아침 이제 막 문을 열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카페를 바라봤다.

    이곳에 서서 그림 그릴 준비를 하던 고흐처럼. 한참을 그곳에 있다 보니 신기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주변 카페들은 손님들로 시끌시끌한데 유독 ‘밤의 카페’만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었다. 아마도 나처럼 반대편 카페에 앉아 ‘밤의 카페’를 바라보며 즐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고흐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참 좋았던 점 중 하나가 고흐가 작품을 그렸던 곳에 이젤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작은 마을은 그를 느끼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배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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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카페 테라스’를 완성하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해서, 또 부드러운 베네로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해서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 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그에게 파괴와 광기의 공간이라 여겨졌던 밤의 카페였지만 나에게는 너무 아름다운 노란색이 가득한 밤의 카페였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란색이 있을까? 고흐의 노란색에 마음을 뺏긴 후 누군가가 나에게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흐의 노란색’이라 답한다. 아를에서 고흐를 추억하는 마지막 장소는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one)’을 그렸던 론강이었다. 이틀 전 숙소를 구하지 못해 청승맞게 론강에서 울어버렸지만 별이 빛나는 론강을 바라보니 꼭 고흐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광기어린 예술 혼을 불태웠던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 남프랑스의 태양, 하늘, 바람과 함께 그렇게 고흐는 아를에 영원히 살아 있는 듯했다.

    여행TIP

    △ 여행 안내소에서 ‘반 고흐 지도’를 받으면 아를에 있는 고흐 작품 명소를 개인적으로 손쉽게 둘러볼 수 있다.

    반 고흐 트레일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전문 미술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흐의 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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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정

    △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 카페 '소금사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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