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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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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벌써부터 그리운 이름, 서인숙 시인!-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03-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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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 첫 봄비가 내린 3월 4일 아침, 우리 지역 문단의 큰 어른이신 서인숙(徐仁淑) 선생께서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1주일 전 동료 문인들과 선생이 입원해 계신 삼성병원으로 문병 갔고, 선생의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언에 깊이 절망하면서도, 그래도 연명이라도 하면서 우리 곁에서 늘 함께해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빌었습니다. 선생께서 살아계심만으로도 우리 후배 문인들은 의지처가 된다고 여겼기에 의외로 빠른 부음은 뭔지 모를 억울한 심사를 갖게 했습니다.

    비보를 듣고 선생의 빈소를 차린 마산의료원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새삼 선생과의 첫 만남부터 오늘까지의 인연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첫 만남은 1977년 가을쯤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제가 고등학교 문예부원으로 백일장에 생애 처음 참가했을 때, 주최 측인 한국문협 마산지부장이셨던 선생을 뵈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이기도 했던 서인숙 선생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제 작품이 상위권에 입상되었다는 사실은 훗날 심사를 함께했던 정진업 시인께서 들려주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제가 ‘글쟁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마땅히 내 문학의 첫 번째 지남인 셈입니다. 그런 작지만 예사롭지 않던 인연이 선생이 운영했던 ‘백자화랑’을 드나들면서 마산의 문인들과 만날 수 있게 됐고, 이후 1993년 경남가톨릭문인협회(현 천주교마산교구 가톨릭문인회)의 창립 과정에서 선생이 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제가 사무국장이 되어 보좌하는 관계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의 서인숙 선생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던 초기 지역문단의 문인들을 서로 잘 이어주면서 두툼한 작품 활동을 채워가도록 활성화시켰고, <마산문학>의 발간에도 사재를 쾌척할 만큼 후덕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든든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역문학의 글들이 더 의미화되어 발전할 수 있었고 문인들 사이가 하나의 즐거움으로 엉킬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덕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당시 문인들은 크든 작든 선생에게 빚을 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학 외적인 활동보다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은 공식 문단 경력만 반세기가 훌쩍 넘은 선생의 글들입니다. 선생의 문학에 대해 자식뻘에 불과한 후배 문인이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에 기여한 점은 평생에 걸쳐 발간한 책만 보아도 먼저 그 성실성과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아직 선생의 공적 공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서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는 1965년 『현대문학』지에 수필 ‘바다의 언어’로 등단한 후 5권의 수필집을 발간했고, 1979년 조연현 문학평론가의 추천으로 시를 쓴 후 5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겨울 상재한 마지막 시집 <청동거울>이 조만간 발간될 예정이지만 이제는 주인 잃은 유작시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문학에만 뜨거운 열정만 가졌던 것이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뛰어난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생활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었습니다. 자연과 문학에서도 ‘미’를 사랑했고, 특히 백자를 위시한 많은 고미술품에서도 ‘미’를 즐겼습니다. 선생을 따랐던 김명희 시인이 장례미사 때 바친 조시에서 “백자, 와당, 청동거울, 조각보 / 꽃, 봄비, 구름, (…) 시 한줄 / 숨 붙지 않은 것까지 불러들여 혼을 불어넣었던 / 우주적 세계관”을 가진 분이라고 노래할 만큼 선생의 미적인 생은 너르면서도 깊었고 밝으면서도 서늘했습니다.

    평생 문학을 삶의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가톨릭 신앙의 겸손과 온유의 길을 걸었던 선생이 영면에 든 요셉동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후배 문인들 모두 선생과의 이런저런 개인적인 착잡한 상념과 추억들을 삼키면서 벌써부터 선생이 그리워지며 그간 함께했음을 고맙게 느낍니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에서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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