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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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경남 제과·제빵 최고장인 이선구 씨

나눔 앙금 넣어 희망 반죽한 ‘사랑의 빵’ 굽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생계 이으려
1981년 마산 고려당서 빵과 첫 인연

  • 기사입력 : 2016-03-1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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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부산 비엔씨, 광주 궁전제과, 안동 맘모스, 전주 풍년제과 등등 동네빵집이 전국적으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유명 동네빵집에서 빵을 사려는 사람과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치 성지순례라도 하듯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대기업들이 자본을 앞세워 지역 골목 상권을 잠식하면서 동네에 하나씩 있던 동네 슈퍼와 동네빵집들이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대기업과의 전쟁에서 자신만의 무기로 당당하게 살아남은 동네빵집은 창원에도 몇 군데 있다.
     
    그 동네빵집 사장님 중 대기업과 맞서 전국의 동네빵집 지키기에 나섰던 인물이 있다.
     
    올해로 제과제빵 경력 35년째 이선구 제과·제빵 기능장(5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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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빵집을 살려라= 지난달 23일 전국의 동네빵집들이 다시 한 번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대기업 대표와 동네빵집 대표자들이 마주 앉아 제과점업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 재지정 여부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 이선구 대표는 동네빵집 대표로 나갔다. 대한제과협회 부회장 자격이자 동네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회의 결과 동네빵집 보호 규제가 3년 연장됐다.

    이선구 대표는 동네빵집 지킴이로 활동한 지난 3년간의 시간을 되새기며 앞으로 동네빵집이 해 나가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2002년도에 전국에 8000여개 동네빵집이 절반가량 사라져 버렸어요. 경남에서도 유지된 동네빵집은 불과 1000여개에요. 이래서는 살 수가 없겠다 싶어 나섰습니다. 동네빵집 살리기에 나섰던 지난 3년간 전국에서 2500여개의 빵집이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프랜차이즈와 경쟁해 살아남으려면 메뉴 개발과 동시에 경영마인드도 가져야 하고, 소비자들과 소통도 필수입니다.”

    ◆빵, 내 인생의 전부= 그와 빵의 인연은 1981년 마산 창동의 고려당에서 시작됐다. 충남 공주 산골마을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어린 농부가 됐다. 돈을 벌어야 했고, 가을걷이 후 농한기 금쪽같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1981년 12월 초 벼 한 가마니를 둘러메고 큰형님이 계시던 마산으로 왔다. 때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려당에 자리가 났고, 빵장이로서 첫걸음이 시작됐다.

    “당시 고려당은 마산에서 큰 빵집이었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는 케이크를 3000~4000개씩 만들었어요. 새벽 2시 반까지 일을 했는데 5시에 깨워 다시 일을 시키더라구요. 빵 만드는 기술이 없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심부름이나 잡일이었는데 싫은 소리 않고 뭐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했습니다. 12월 25일이 되니 제 손에 3만원의 월급이 쥐어져 있더군요. 단팥빵만큼 달콤한 월급이었습니다.”

    이듬해 2월 농사를 지으러 공주로 돌아가려는 그를 고려당 사장이 붙잡았다. 월급 5만원에서 한 달 차비 240원을 뺀 전액을 모았다. 땀은 그의 청춘을 배신하지 않았고, 마산에 집을 얻어 부모님을 모시고 올 수 있었다.

    이후 창원, 마산의 잘나가는 빵집에서 공장장을 거쳐 1993년 북마산에 첫 빵집을 열기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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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2015년도 우수 숙련기술자와 2015년 경상남도 최고장인에 선정된 이선구 대표가 빵을 만들고 있다./전강용 기자/


    ◆경남 제과·제빵 최고 장인= 첫 가게를 열고 채 10년 되지 않은 2001년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에 지금 운영하는 빵집을 새로 열었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각 골목골목 진출하던 시점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추는 것이었다. 만드는 종류를 줄이고 맛에 집중하니 손님들의 반응은 더욱 좋아졌다. 그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빵의 품질과 맛으로는 어느 누구와 견줘도 자신이 있습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건강한 빵을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면 프랜차이즈 빵집과 견줘도 밀리지 않아요. 동네빵집이니깐 가능한 거고요.”

    인기 드라마였던 ‘제빵왕 김탁구’ 기술 자문을 맡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 제과·제빵 우수 숙련기술, 경남 제과제빵 최고장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랑합니다 나의 이웃=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봤던 그에게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돕는 일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마산 독일빵집에서 일하던 무렵 우연히 동료를 따라갔던 한 보육원에서 자신을 따르던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빵을 싸 들고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 나눔의 시작이었다.

    “쉬는 날마다 꼬박꼬박 찾아갔어요. 내가 만든 빵을 예쁜 아이들과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죠.”

    진해에 새로 연 빵집이 자리를 잡아가던 2002년부터는 지역 경로당과 푸드뱅크에 빵을 나눴다. 때마다 조금씩 해온 봉사와 나눔 활동을 더하면 500시간, 기부금은 1억5000여만원에 이른다.

    ◆동네빵집 넘어 세계빵집으로= 대한제과협회 부회장으로서 활동하며 기능대회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이선구 대표는 후배 제과제빵인들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프랜차이즈 빵집과 맞서 싸워 이길 자신만의 무기를 개발하는데 시간과 돈, 열정을 아끼지 말라고 조언했다. 최고장인에 올랐지만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메뉴 개발이기도 하다.

    소비자들과의 소통 역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빵은 문화에요. 전문성은 기본이고, 소비자들에게 빵과 과자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신뢰를 가지고 빵을 찾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빵장이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만든 빵을 먹은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을 볼 때 제일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이제 해외시장 진출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이선구 창원 팥트라슈 대표=△1964년 충남 공주 출생 △1981년 마산 고려당 입사 △2006년 대한제과협회 진해시지부장 △2009년 제과협회 경남지회장 △2010년·2012년 한국프로제빵왕 경연대회 조직위원장 △2011년 제과기능장 △2009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표창 △2011년 창원시장 표창,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2012년 중소기업청장 표창, 경남도지사 표창 △2014년 경남장애인협회장 표창, 대통령 표창 △2015년 대한민국 제과제빵 우수숙련기술자, 경남제과제빵 최고 장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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