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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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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리운 시냇가- 정이식(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6-03-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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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냇가에도 봄이 왔다. 물오른 나무에 생명의 푸른 잎이 툭지다. 흐르는 냇물 위에 물버들 새순처럼 여린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비단옷을 입지 않고는 귀향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로 서울 땅을 밟던 열여섯 소년. 배우려는 일념으로 도전한 일터였지만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버티기에는 무리가 뒤따랐다. 일이 끝나도 쉴 수 없었다.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어리다는 이유로 도맡았기 때문이었다.

    물먹은 솜처럼 처진 몸뚱이를 끌고 평소처럼 심부름을 다녀오던 그날은 비가 내렸다. 총총한 판잣집의 처마를 따라가다 널찍한 길 너머의 커다란 집이 신기루처럼 눈에 뜨였다. 붉은 벽돌집 전체를 휘감은 둥근 철조망이 눈에 거슬렸으나 호기심이 당기어 주저 없이 담장 아래로 들어섰다. 그때에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높다란 창틈으로 번져 나오는 불빛 안에서 누군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울적한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음률에 매혹되어 빗물이 후려치는 것도 잊은 채 담벼락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마을 어귀엔 시내가 흐르고 송사리 잡기에 한창인 동생의 목소리가 가느다란 선율에 묻히며 어머니 얼굴과 함께 떠올랐다. 어린 자식을 서울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저 냇가에 앉아 오늘도 울고 계시겠지.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곡이 끝나고 눈을 뜨며 쓰레기통 옆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화들짝, 얼마나 놀랐던지. 눈물로 범벅된 모습을 들킬까 황급히 거기를 벗어나며 누굴까? 어쩜 또래의 소녀일지 몰라. 쓸데없는 생각에 얼굴은 또 얼마나 화끈대며 달아올랐는지.

    뒷날부턴 아예 작정하고 나는 그 길을 택하여 심부름을 다녔다. 언제나 바이올린을 켜는 건 아니었지만, 또 언제나 그 음악을 켜진 않았지만. 나는 그 골목에서 수없이 그 음악을 들었고, 한 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담벼락에 귀를 붙이고 마음속에 눌러 담았다.

    그러나 서울은 내게 비단옷을 입힐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무명옷조차 입지 못하고 쫓기듯 떠나올 때 눈물은 왜 그리 쏟아지던지. 그리고 그 음악에 대한 제목도 연주자도 아무것도 알 수 없이 세월은 자꾸 흘러갔다.

    어느 봄날 우연히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삽입곡으로 올려놓은 음악을 듣다 나는 자지러지고 말았다. 바로 그 음악이었다. 쓰레기통 옆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며 듣던 바이올린 소리. 그림자로만 비친 소녀의 어깨너머로 흘러나오던 고향의 물소리. 그렇게나 찾으려 했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 애석하게도 음악에 대한 설명이 거기엔 없었다. 부리나케 올린 이에게 쪽지를 보내고 답을 받으며 어린 소년을 밤새워 울린, 느낌에서만 존재하던 소녀가 연주한 곡이 아다모의 그리운 시냇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고 황홀하던지 나는 밤새워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어린 날의 시냇가에 대하여 말하여 주오. 너의 물결을 따라 나의 운이 흐르던 그 시절을.” “추억을 따라 어린 시절은 흐르고 흐르네. 나는 말없이 와서 울었고 너는 눈물이 되었다네.”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고 한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두운 기억 저편을 샘물 되어 헤집고 있는 그리운 시냇가에 대한 추억. 도전의 두려움이나 성공의 확신도 계산하지 않던 젊음 그 자체가 희망이었던 시절. 세월이 흐를수록 그래서 추억은 빛이 난다.

    정이식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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