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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알파고와의 대국이 불공정하다고?- 박형주(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6-03-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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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풍 정도가 아니다. 알파고 앞에서 북핵도 총선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슈 블랙홀이라고, 이게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하냐고 묻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말 그럴까?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중이 분명치 않다면,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된다. 30년쯤 지나서 살아온 날들을 회고할 때, 인공지능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하루 만에 갈아엎은 알파고 대국을 기억할까, 아니면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의 정치 양상을 기억할까? 넘쳐나는 보도와 분석으로 인한 알파고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를 더하게 되는 이유다.

    첫 대국 때만 해도 그냥 화젯거리였다. 언론에 나온 딥러닝이라는 단어는 강 건너 마을 얘기 같았고,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 같은 어려운 말은 금기어였다. 쉬워 보이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로 퉁치는 바람에 터미네이터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 무시무시한 스카이넷이 나오는 영화 말이다. 어설프고 선정적인 인공지능의 인간지배 가능성 얘기 대신에, 스테판 호킹 박사가 던진 굵직한 화두인 ‘인공지능 시대의 자본주의와 부의 재분배’ 같은 논의를 시작했으면 더 남는 게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알파고의 연승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어 이게 아닌데’의 느낌. 점입가경으로 공정성 문제도 튀어나왔지만, 즉시 나서서 이의 제기를 안 한다고 잘라 말한 한국기원의 의연함은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알파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이 알고리즘을 분산처리 방식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앙처리장치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연결해 처리속도를 높인다. 보편목적 GPU는 여러 개의 계산을 동시 수행해야 하는 벡터수치계산에 탁월해서 그래픽과 무관한 계산용으로도 흔히 쓰인다. 저가로 슈퍼컴퓨터를 구축할 때 수천 개의 CPU를 모아서 구축한 클러스터로 평행 알고리즘을 돌리는데, 이런 클러스터는 세계 슈퍼컴 경쟁대회에 나가면 하나의 슈퍼컴으로 간주돼 계산력을 평가받는다.

    정말로 단독 컴퓨터이어야 한다면, CPU들을 모아 박스 하나에 넣으면 해결된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알파고가 사용한 CPU와 GPU들을 모아서 그렇게 한 대로 만들어도 세계 슈퍼컴 랭킹 500위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분산처리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CPU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현해도 현 알파고의 70% 수준의 성능을 낸다. 딥러닝이 평행처리 방식에의 의존도가 낮다는 뜻이다. CPU를 현 수준보다 더 늘리면 오히려 알파고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자체 보고도 있다.

    1997년에 세계체스챔피언을 꺾은 IBM의 딥블루는 체스를 위해 하드웨어 자체를 구축한 경우였다. 하지만 구글의 목적은 특정 기능만 수행하는 기계 개발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자동번역기 또는 무인질병진단기 같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보편적 인공지능 알고리듬의 개발이므로, 특정 하드웨어 구축의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CPU 하나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1000여 명의 훈수꾼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알고리듬의 분산처리 구현에 대한 오해 탓으로 정리하자. 우리의 천재기사 이세돌은 알파고라는 알고리듬과 대국한 것이고, 의연함과 품격을 시종일관 지켜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구글에겐 환상적인 마케팅 이벤트가 됐지만,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수를 두는 방식을 네이처지 논문으로 사전 공개했고, 대국 방식도 숨기거나 중간에 바꾼 적이 없다. 방대한 기보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의 개선에 매달렸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여서 CPU 규모도 유럽챔피언을 꺾을 때와 동일하다.

    불편한 심정에 머물게 아니라, 알파고로 확인된 시대의 변화와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가 강력한 수학적 알고리듬과 결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변화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몇 년 뒤면 무인 택시가 길가에서 나를 태울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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