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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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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 맞다- 김완하

  • 기사입력 : 2016-03-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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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두 아들과 일요일

    동네 목욕탕 갔다

    알몸으로 대면하는 부자지간

    아이가 묻는다

    아빠, 왜 어른들은 고추에

    머리카락이 났어?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렇구나,

    아빠는 오랫동안 그걸 모르고 살아왔구나

    고추에 머리카락이 나고

    고추로 사고하면서부터

    생이 이렇게 힘겨워지는구나

    고추에 머리카락 났다

    네 말 맞다

    ☞ 손등이 갈라터지면서 뛰어다니던 겨울 들판, 청둥오리 떼로 뒤덮인 바다, 복사꽃잎 고물 덮인 흙 마당…. 그때가 낙원이었다. 가슴으로 생각하던 시절, 아예 생각이 필요 없던 시절, 그때가 낙원이었다.

    붉은 열매를 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최초의 인간처럼, 고추에 머리카락이 나면서 생은 낙원에서 추방당한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생은 가슴으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고추로 사고한다. 고추로 사고하는 생은 고추처럼 발기되는 것에만 끌린다. 곧추 선 고추처럼 승진하고 싶은 퇴근길, 곧추 선 고추 같은 빌딩 한 채를 부러워하는 퇴근길…. 고추에 머리카락 난 이후 생은 이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추에 털 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이 제법 길었다는 것이다. 요새는 돌 지나자마자 고추에 털을 달아 주는 세상이니…. 이중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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