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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기자] 다시쓰는 7번 국도- 에필로그

  • 기사입력 : 2016-03-25 13: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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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부 김언진
     
    강원도에는 눈이 내리던 늦겨울의 1박 2일 여행을 조각 내어 하나씩 쓰다보니 어느새 길거리에는 분홍빛이 도는 봄이 왔다. 드디어 이번이 마지막 조각이다.

    우선 '다시쓰는 7번국도'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경써서 좀 더 잘 쓸걸 그랬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정말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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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게 눈덮인 산을 바라보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달렸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을 글로 남겨보자는 제안은 내가 가장 먼저 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준비하는 단계부터 여행은 분명히 재밌을거라 확신했고, 이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다시 쉽게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서 선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 속내를 훔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글 잘 쓰는 선배들 틈에 숟가락을 살짝 얹어 한 뭉텅이로 '잘 쓴 글' 취급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한 달 넘게 글을 연재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마다 '글 재밌게 잘 봤다'는 얘기를 꺼내는걸보니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여행을 다녀온 뒤 평소처럼 이리저리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하고 매일 공들여 기사를 계속 써 냈는데, 기사보다 가욋일로 후루룩 쓴 이번 여행기에 더욱 관심이 쏠리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물론 일일히 사실 확인을 해야하는 기사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썼다는 말이지, 마감의 압박도 어마무시했고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지 기사 못지 않게 고민했다.

     
    테라로사, 송정해변, 경포대, 선교장을 차례로 둘러본 우리는 창원으로 돌아올 채비를 했다. 돌아오는 길도 떠날 때와 같이 아시안하이웨이를 탔다.

    새롭고 자극적인 일탈의 끝은 무미건조한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래서 늘 미련과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고.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덜했다.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떠날 때 해가 져버려 보지 못한 바깥 경치도 감상하며 마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망양휴게소에 들러 차에 기름도 넣고 지친 몸에 당도 좀 채워넣고 열심히 달렸다.

    강릉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히 선교장 근처 식당에서 막국수와 메밀칼국수, 감자만두, 감자전에 막걸리까지 셋이서 족히 5인분은 넘게 먹었는데, 저녁이 되니 속절없이 배가 고파졌다. 셋의 허기가 동시에 최고조에 이를때쯤 하필이면 영덕 근처를 지날 무렵이었고, 대게는 제철이고. 핸들을 꺾지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리가 없다. 대게는 되게 비쌌고, 되게 맛있게 먹었다. 특히 곁들여 나온 대게탕 국물 내는 비법이 궁금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 창원에 다다르니 거의 자정이 다 됐다. 이틀을 꽉 채운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각자의 집 앞에 선배들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유경선배는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장갑 한 짝과 미처 다 챙기지 못한 짐을 내 차에 두고 몸만 내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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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맞이 명소'로 유명하다는 망양휴게소. 휴게소가 유명관광지라니 반신반의하며 전망대에 올라갔는데 너무 좋아서 돌고래 소리를 냈다.

    1박 2일의 여정을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여섯편으로 쓰는 동안 다시 찬찬히 여행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다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올해는 연초부터 유독 안팎으로 속시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그동안 막무가내로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며 살아온 벌을 한번에 몰아 받는구나 싶었다. 괜찮아질만 하면 다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깊은 수렁에 빠졌다가, 다시 겨우 뭍으로 나와 숨을 쉬려하면 머리채가 붙잡혀 심해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던 견고한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거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커다란 숨구멍이 돼 줬다. 겉으론 세 보이지만(?) 마음은 용광로 같은 선배들과 함께 한 덕분이다. 7번국도를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다.
    여행과 글을 마무리를 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선배들과 여행 뒷풀이를 하기로 했는데 아직 못했다. 그리고 작년에 받은 제주도 호텔 숙박권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

    어쩔 수 없다. 다시 떠날 계획을 세워야겠다.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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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국수를 향한 강한 집념.

    ▲문화부 이슬기
     
    꽃보다 기자에 쓴 7번 국도 여행기를 페이스북에 올릴 때 이런 말을 썼다.
    '기사 아닌 글을 이렇게 길게 적어본 일이 있어나.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내가 누군지 찾아 헤매게 됐다. 덕분에 이 여행과 여행기의 가치는 내게 자꾸만 커져간다'고.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어두는 것으로 순간을 간직하곤 했던 나는 내 감정을 되짚어 나갈 시간을 주는 데는 인색했다. 사실 귀찮았다. 사진 정리도 못 하는데 하물며 여행기를 적어두는 것은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이번 여행은 달랐다. 자의 반, 타의 반 여행기를 연재하기로 하면서 1박 2일 짧은 이 여행을 복기했다.

    짧아서 공부가 됐다. 왜 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지, 어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는지, 그 시작과 과정은 어찌 진행되었는지,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곱씹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었는지 시간대와 장소별로 차분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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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양 휴게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쉽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여행 당시에 느꼈던 것들 보다 더 많은 것들이 그려졌다. 내 과거의 어떤 행적과 맞닿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을 사건이라고 한다면, 한 돌발적 사건에다 내가 의미를 덧입히고 과거와 연결지으면서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의 여행 역사, 나의 역사.

    그러니까 나는 여행을 두 번 한 셈이 됐다. 겪으면서 한 번, 쓰면서 한 번. 몸만 여행을 떠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내가 온전히 다 떠나는 '관광 아닌 여행'이 된다는 것도.
     
    우리 신문 연재물인 '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을 쓰는 박미정 대표님은 수많은 나라를 다녀왔고, 몇 년이 지난 여행도 있는데도 낱낱이 기억하는 것들이 많을까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 알았다. 대표님은 여행지에서 매일같이 한 줄이라도 여행 일기를 쓴다는 걸. 쓰면서까지 두 번 다녀오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여행을 좋아한다 하면서 그 순간만을 흘려보냈던 그간의 여행이 너무나 아쉬웠다. 다시 돌이키기엔 너무나 먼 시간들. 하지만 내가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한 번씩 꺼내보고, 내가 왜 거기 있었는지를 내가 그 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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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게를 향한 강한 집념.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사진이다. 얼마 전, 작은 사진인화프린터를 샀다. 휴대폰과 메모리 속의 사진들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때 그 때 인화할 사진을 추리는 것도 일이었으니까 그냥 내버려둔 탓이다. 이제 사진을 원할 때 뽑을 수 있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말자 다짐한다.

    두 번 하는 여행의 시작, 다시 쓰는 여행의 출발을 응원해주시기를. 이 여행을 떠나게 도와 준 유경선배, 언진에게 다시 고맙다. 뒷풀이 하러 갑시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방송인터넷부 김유경
     
    며칠 전이었어요.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얹힌 것처럼 답답한 날이었습니다.
    1박2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마침 퇴근 시간과 맞물려 차는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목련이 흐드러진 봄이었지만 제 속은 곧 눈발이 날릴 듯 차고 흐렸다고 할까요.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요. 무료했으니까.
    그러나 사회자와 패널의 대화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머리가 복잡했거든요.
    저처럼 회고적인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이 답답한 문제가 왜 일어났을까, 이렇게 되기까지 무엇이 잘못된 걸까하는 스무고개를 저혼자, 힘겹게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여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허는디
    향단아 술상하나 차리여라 도련님 가시는디 오리정으로 전송가자.
    술상채려 향단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동림 숲속으로 울며불며 나가는디,
    초마자락 끌어다가 눈물 흔적을 씻으면서,
    잔디 땅 너룬 곳에 술상 내려 옆에다 놓고,
    두 다리를 쭉 뻗치고 정갱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쩌리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왠일이란 말이냐?
    내가 이리 사지를 말고 도련님 말고삐에 목을 매여서 죽고지고.
    미리 앉어 울음을 울적에…'
     
    무슨 소리였냐고요?
    명창 김소희가 부른 판소리 '춘향가'였습니다.
    춘향이가 이몽룡을 눈물로 보내는 '오리정 이별대목' 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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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선교장.

    저는 김소희 명창의 칼칼한 목청과 화려한 장단에, 감각적 북소리에 점점 빨려들어갔습니다.
    앞서 밝히자면, 저는 판소리에 판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굉장한 몰입이었고, 때문에 저는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온 듯 했어요.
    엑셀과 브레이크에 발을 붙였다 뗐다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그저 껍데기가하는 기계적 동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딘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었어요. 꼼짝을 않고 한참을. 그것이, 그 세계가 나를 완전히 관통해 지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말이죠.
    춘향가가 끝이 나고, 사회자와 패널이 작별을 고하고, 아파트 분양광고가 흘러나올 때까지요.
    그리고 저는 아주 서서히 차 안의, 운전석의,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안경을 낀, 운전대를 부여잡은 제 작은 육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제 속의 뭔가가 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주 기적적으로요.
    그날 밤, 저는 오랜만에 밥도 잘 먹고 잠도 푹 잤습니다. 다음날엔 집청소도 하고, 팔랑팔랑한 봄옷도 몇벌 사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리고 불현듯, 제 삶이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바닥을 친다고 느꼈던 어느 날, 지인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네 앞에 일어난 불가해한 일의 진정한 의미는 시간이 흐른 뒤에 판명나는 것이라고, 지금은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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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송정바다.

    그래서 더는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껏 스무고개를 했다면 스무한고개는 넘지 않고 여기서 멈추기로요.
    그건 그냥,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니까요.
    미시적인 것이 제스스로 몸을 불려 거시적으로 보일 때까지, 기다려보자고요.
     
    7번 국도 여행기 마지막에 이런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쓰는 이유가 뭐냐고요?
    여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선사하는가를 생각해보았거든요.
    여행은 우리에게 여행지의 이국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지요. 그렇게 여행자의 견문은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하지만 여행은 단지 그런 교과서적인 속성을 지닌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은… 굳이 말하자면, 며칠 전 제가 우연히 들었던 춘향가의 한 대목과 같지 않을까요.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다른 세계를 목격하게 하는, 반쯤 열린 문 같은 것 말이죠.
    우리는 바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지금 여기에 당면한 문제의 열쇠를 건져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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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양휴게소.

    두 후배는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떤 세계에 잠시 들렀다 왔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도.
    저도 제가 무엇을 느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각자의 마음 속에 한잔의 물처럼 잔잔하게 담겨 있겠죠.
    우물처럼 깊지도 않고 바다만큼 넓지는 않지만, 그건 분명 언진, 슬기, 나에게 요긴한 생명수가 될 겁니다.
     
    삶의 실제와 이상의 비대칭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용기,
    죽을만큼 힘든 순간에도 긍정을 말하는 여유 같은 것으로 말이죠.
     
    네. 저는 꼭 그러리라 믿어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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