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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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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내일을 위한 시간- 박승태(창원산업진흥재단 미래산업연구팀장)

  • 기사입력 : 2016-03-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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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산업계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온 책은 ‘축적의 시간’이다. 서울공대 교수진 26명이 한국 산업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언했다.

    그간 우리 산업의 발전모델은 선진국이 제시한 개념설계를 기초로 빠르게 모방, 개량하면서 생산하는 압축적 성장이었으나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평가한다. 가치사슬의 앞 단에 있는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선진국으로 진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기초연구, 제품개발, 생산, 마케팅, 판매 후 활동(After Sale)의 가치사슬 단계에서 전후 양 끝단의 활동이 부가가치가 커진다는 이론(Smile Curve)은 제품 기획과 브랜드 마케팅으로 세계를 석권한 애플이나 나이키의 예를 보면 수긍이 간다.

    여기서 기초연구는 디자인, 특허, 개념설계, 콘텐츠를 일컬으며, 개념설계란 한마디로 제품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석학들은 이것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드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어진다고 강조한다. 기계산업의 메카인 창원의 기업들도 중·저위 기술로 제품 생산에 주력하며 성장해 왔으며, 세계적 저성장 국면의 장기화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부상으로 산업경쟁력이 급감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소재·부품산업 진흥, ICT 융합역량 개선, R&D(연구·개발)와 마케팅 역량개발, 첨단산업 육성 등이 지역산업의 대안으로 제기돼 온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신제품 개발, 신시장 개척 및 새로운 사업으로의 다각화만이 성장의 궁극적 대안일 것이다.

    몇 달 전 한 중견기업의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공작기계를 시작으로 방산·항공, 발전설비, 환경·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회사다. 이 대표는 정부의 산업진흥책에 따라 기술력과 시장전망을 토대로 투자기간과 예상매출, 즉 리스크를 고려해 투자해 오며 사업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국 기업의 경쟁력은 차별화된 고급제품에서 나오는데 이는 기술력, R&D투자, 인재양성에 그 근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장경험에서 나온 근본적 해결책과도 일맥상통하는 공대 석학들의 해법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창조적 축적을 위한 열린 자세와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새롭고 도전적인 개념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경험지식을 축적하고자 노력하는 조직과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인센티브 체계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른 각도로 본다면 한마디로 경영혁신이라 할 수 있다. 경영혁신은 경영 프로세스와 조직을 변화시키고 이를 구조화해 경쟁우위로 삼을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사업 포트폴리오의 개편, 조직구조의 혁신, 보상과 인센티브제도의 개혁, 기업문화의 혁신과 같은 기업경영의 제반 시스템의 변화를 의미한다. IT인프라의 혁신 또는 아웃소싱을 통한 원가절감 등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의 변화인 운영혁신이나, 획기적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제품혁신,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 같은 전략혁신보다 더 근원적이고 상위의 개념이 경영혁신이다.

    이러한 총론적 추진방향에도 불구하고 실행을 위한 각론에 이르면 흔히 답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 경영이론가는 답이 없는 세계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것, 리스크를 감수하며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입증해 내는 용기와 집요함이 정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했다.

    냉엄한 현실 사이로 한 발자국씩 ‘내일을 위한 시간’을 축적해 가면, 때론 실패하더라도 손에 잡히는 희망이 점점 커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길에선 수많은 조력자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는 지금의 위치에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박승태 (창원산업진흥재단 미래산업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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