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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기사입력 : 2016-04-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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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공스님 (창원 구룡사 주지)


    봄꽃이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천주산 자락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수많은 벚꽃이 아름다운 꽃비를 내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삶은 그리 한가하고 여유롭지가 못한 것 같다. 다가오는 20대 총선으로 나라 안팎이 선거 분위기로 어수선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로 인한 공포로 불안해하고 있다.

    요즘 우리 한국사회는 고도 산업의 급성장으로 인한 빈부의 극심한 격차로 사회적 불만과 이기심이 만연해 있다. 경전 말씀에 보면 “만족한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자도 오히려 편안하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천당에 살아도 역시 마음이 흡족하지 못하다. 그래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부자라 할지라도 가난한 것이다”고 설하고 있다. 지금 현재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든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물질문명에 찌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분명 행복한 삶에 있다. 물질이 풍요롭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자신은 행복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는 좀 더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질병 없이 오래 살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몸도 마음도 편안하며, 외롭지 않고 자손이 복된 삶을 사는 모습이다. 이런 외형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행복은 결국 영원한 행복의 길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욕망과 욕구의 기준은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달마의 가르침에 “우리들 마음속에 구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내고 분노하며 어리석은 세 가지 마음의 번뇌가 스스로의 나쁜 행위의 결과를 만들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은 좋지 않은 업보의 결과를 만들어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욕망이 일어나는 모습은 그 욕심의 한계가 끝이 없으며,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충족되지 않으면 욕구불만에 빠지는 심리가 감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이 크면 클수록 불만이 더욱 깊어진다. 또한 이기적 에고이즘인 아집(我執), 즉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과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라는 소유욕이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숫타니파아타’에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知恩]와 알맞은 때에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라고 했다. 이 평범한 행복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자. 인간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행복하게 사는 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자. 나눔과 함께 더불어 가는 세상을 통해 우리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행복한 인생을 스스로 가꿔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최상의 행복의 길이며, 그 행복은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인연에 순응할 때 행복은 자연히 만들어질 수 있다. 신공스님 (창원 구룡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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