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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그 이후- 강맑실(사계절출판사 대표)

  • 기사입력 : 2016-04-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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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년경 약 500여 개의 정치 단위들이 혼재해 있던 유럽에서는 이 작은 정치체를 통합해 대국을 이루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은 오히려 절대주의 시대에 국왕의 권력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왕은 재정권을 쥐고 있는 귀족과 부르주아 등 실력자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고, 반대로 그들은 국왕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고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경철 교수는 그의 저서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절대주의 체제는 국왕이 절대적인 ‘척’하는 체제로 그것은 매일 장엄하게 상영된 절대주의라는 국가적 연극이었다고 표현한다.

    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는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원제 ‘정치적 사고’)라는 책을 통해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대표들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명확히 알게 됩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결코 똑같지 않다. 계층과 연령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조건에 처한 사람들도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민의’가 존재하고 국민이 뽑은 대표들이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이 대표제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지만, 사실상 통일된 확고한 민의가 존재하는 것일까.

    스기타는 오히려 전체 민의가 통일되지 못하고 모호하거나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논쟁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테러방지법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필리버스터’를 보며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게 된 것처럼.

    그러나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각 정당과 출마한 국회의원들이 서로 대립하고 논쟁하는 속에서 국민들은 쟁점이 무엇이고 대립 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경쟁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정책들은 오랜 시간 거듭 사유하고 실행하며 그것을 밑거름 삼아 나온 것들이 아니다. 즉흥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껍데기에 불과한 공약들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자유주의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목표는 ‘집권’으로 둔갑한 지 오래됐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권은 결국 투표한 사람들의 발언권을 강화할 뿐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앞으로 더 지을 것인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것인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멈춰버리는 것인가’, ‘노동자들의 권익은 경제 논리에 묻히는가’ 등등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결과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며, 선거 후에 공약들은 실행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투표의 결과에 상관없이 투표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기타의 말을 인용해보자.

    “선거나 정당정치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는다면, 그 이외의 정치를 육성하여 정치인들을 포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도망쳐버린다면 정치인들에게 모든 것을 백지 위임하게 될 뿐입니다. 정치인의 지위를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선거 이외에 다른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 큰 움직임은 반드시 정치를 바꿉니다.”

    연극이 끝나고 정적과 어둠만이 흐르고 있을 무대 앞에서, 우리는 정치를 바꿀 큰 움직임을 여전히 생각해야 한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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