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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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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화엄(華嚴)- 서휘(창원문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6-04-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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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깊어져 온 산과 들에 꽃들이 가득합니다. 그 화려했던 벚꽃이 지고난 후 한동안 허전해했는데 그 마음을 알았는지 며칠 전 다녀온 산에는 정상까지 연분홍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화려한 꽃들을 보고 있자니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의 화엄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화엄의 본래 뜻은 ‘들판에 온갖 꽃들이 저마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엄한 광경’입니다. 잘난 꽃이든 못난 꽃이든 관계없이 저마다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견뎌내고 나름의 개성으로 온갖 꽃들이 피어 있으니 정말로 장엄한 광경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슬픕니다. 이 화려한 꽃들의 잔치를 보고 있으려면 스멀스멀 가슴속에서부터 슬픔과 아픔이 밀려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젊음으로 피어나 제 앞에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저미어 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제 나이 정도가 되고 보니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에서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주변의 청년들 모습에서 어두워 보이고, 기가 죽어 있고, 패기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고 느껴짐이? 마치 미운 오리새끼처럼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듯하다고 느껴짐이? 그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요즘 들판에 저마다의 개성으로 만발해 있는 꽃들이 부러워서 잠시 나를 슬프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인생은 평범하게 살기에도 무척 힘듦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을까요. 유명 사찰의 대웅전 외벽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그림들이 있습니다. 한 소년이 호랑이를 만나 도망치다가 독사 떼가 우글거리는 우물 속의 밧줄에 매달려 있으며, 그 밧줄을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갉아먹음에 줄이 끊어질까 두려워 불안해져 흔들거림에, 우물 속의 벌집이 깨져서 쏟아져 나온 벌들이 마구 쏘아대는, 그 진퇴양난의 고통 속에서도 가끔씩 얼굴에 툭툭 떨어지는 꿀을 맛있게 핥아먹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 그림과 같은 불교의 인생관을 굳이 전용하지 않더라도 인생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청년들이 너무 힘들어하거나 기죽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청년들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을 싹 틔워낼 수 있는 젊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 핀 수많은 꽃/저마다 그리 고운데/보고 있으니 슬프네/이마음 가지고 가면/화엄의 미 깨우쳐져/화려한 꽃들의 잔치/보임대로 느껴질까

    옛날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7걸음을 걷고 나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 하늘과 땅 어디든지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이라고 외쳤다는데,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 수많은 제자들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 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나를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므로 마땅히 존귀하다는 의미이며, 스스로의 숨겨져 있는 잠재적 능력을 믿고 이 능력을 깨우칠 수 있는 노력을 통해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인생을 살아가면 스스로에게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피워내는 꽃이라면 잘난 꽃이든 못난 꽃이든 보이는 그대로 정말로 모두 아름다운 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저마다의 꽃들을 피워내기 위한 노력에 의해서, 화엄의 의미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들판에 온갖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엄한 광경이길 소망해 봅니다.

    서 휘 (창원문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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