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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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마산역 무료급식소 16년째 운영하는 박덕조 씨

“배고픈 설움 알기에 배부른 한끼 대접합니다”
주말 무료급식소 없어 밥 굶는 이들 소식에 주말 무료급식 봉사 결심
아내·자원봉사자들과 매회 300~400명 대접

  • 기사입력 : 2016-04-2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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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조씨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식사를 옮기고 있다.


    “든든하게 드시고 기운 내세요.”

    지난달 2일 낮 10시 30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2동 마산역 광장 앞 무료급식소. 이웃사랑나눔회 회장인 박덕조(66)씨가 컨테이너 박스와 그 앞에 식탁을 마련하고 급식을 준비하느라 한창이다. 물통과 따뜻한 밥, 국을 배식 위치에 마련하는 사이 이마에는 살짝 땀방울이 맺혔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오전 11시 정각 배식을 앞두고 무료급식소 앞으로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60대 할아버지는 “한 끼를 때우기에 더없이 든든하다”며 “비가 와도 쉬지 않고 문을 열어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음식이 담긴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마산 어시장에서 오랫동안 식육유통 업체를 운영했던 박씨는 나눔 봉사로 유명하다. 입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난 요리사이자 고깃집 사장이지만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주말 무료급식소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16년째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배가 고픈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언제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봉사를 해온 건 토·일요일에 급식소가 문을 닫아 노숙자나 어려운 사람들이 밥을 굶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해 밥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예전 마산 역전파출소 앞 가톨릭여성회관에서 먼저 무료급식을 시작해 현재도 하고 있지만 토·일요일은 하지 않아 급식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토·일요일 이틀간을 급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식 시간이 12시가 아닌 11시로 1시간 앞당긴 이유도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정했다.

    “급식소를 찾는 분들 가운데 점심 한 끼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어요. 그래서 앞당겼죠.”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매회 300~400명이나 된다. 급식소에서 제공되는 음식에는 박씨와 아내 윤영순(61)씨의 정성이 담겨있다. 노인들의 입맛과 건강을 생각해 재료만큼은 좋은 것을 고집한다. 1식 4찬에다 국은 되도록 고기를 넣고 있다.

    이렇게 토·일요일 무료급식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매달 500만~600만원. 부담이 되는 금액이지만 모두 개인 돈으로 충당한다.

    “어렵게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어요. 사리사욕을 채우는 의심의 눈길을 받고 싶지 않아 다소 부담이 되지만 참았어요. 봉사는 제 직업입니다.”

    고성 상리면 신촌리가 고향인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살림에 장남이다 보니 공부보다는 농사일을 많이 했다. 또래의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모습은 그에게 설움의 눈물로 다가왔다. 배우고 싶은 갈망을 풀고자 박씨는 15살 어린 나이에 가출했다. 그 당시 1000원을 가지고 무작정 부산 충무동으로 향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객지다 보니 노숙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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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역 앞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 중인 박덕조(오른쪽)씨가 9일 낮 배식에 앞서 자원봉사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누구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처지였고, 바닷가라 많이 추웠어요. 그때 가마니가 참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죠.”

    박씨는 충무동 새벽청과시장에서 수박 등 과일 내려다주는 일을 하다가 부지런하다는 입소문이 났고, 인근 빵집 사장으로부터 우리 집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으면서 일자리를 옮겼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데다 기술을 배울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주방에서 그릇 씻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기술을 터득해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주방장이 됐고, 다시 고향 형님의 소개로 당시 제일 유명하던 부산갈비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주방 생활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주방장에게 인정을 받은 그는 고기를 다듬는 방법부터 맛을 내는 비법과 장사 노하우까지 익혔다. 이 과정에서 사장인 할머니로 인해 인생의 진정한 가치도 깨달았다.

    “그때 사장님이 ‘너도 객지 와서 고생을 많이 해봤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픔만큼 서러운 것이 없고 못 배우면 늙어서 후회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무엇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라’고 가르쳐주신 게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고깃집에서 기술력을 익힌 박씨는 마산에 있는 오양갈비로 자리를 옮기면서 터전을 잡았고, 이후 나만의 가게를 차리게 됐다.

    그는 남의 가게 일을 하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특히 마산 회원2동 정자나무 근처 노인당에 찾아가 음식을 대접하면서 보게 된 어르신들의 웃음 띤 환한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이후 마산역 앞 광장 한편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무료급식을 펼치기 시작했고, 각종 복지시설과 장학회에 성금을 내면서 후원도 아까지 않았다. 박씨의 봉사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비를 털어 석전동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여러 회 열었고, 이웃사랑나눔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학교 교사와 학생, 회사원, 주부 등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음식 배식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손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봉사를 고민하다가 선거에 출마한 것이 되레 독이 됐다. 자신이 생각하는 복지방향을 정책에 반영해보고자 정치에 참여했지만 고배를 마시면서 뜻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고, 재정적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어시장에서 7년 동안 운영하며 명성이 높았던 ‘형제식육유통’ 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했고, 심지어 석전동에 있는 집마저 경매로 넘어갔다.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고깃집인 마산 오동동 ‘우향돈향’에서 아내와 함께 머물면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 예전보다는 여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다만 자비만으로는 운영을 감당하기 쉽지 않기에 후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묵묵히 곁에서 돕고 있는 아내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그 고마움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다”고 말한 박씨는 앞으로 “남은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봉사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마산역에 갔을 때 어르신들이 식사를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반갑고, 힘들었던 마음도 사라져요. 어르신들이 따뜻하게 반겨주면 ‘이 일을 참 잘 택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껴요. 봉사는 제 천직입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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