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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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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배들의 무덤- 이석례(수필가)

  • 기사입력 : 2016-04-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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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부터 대를 이어 살아오던 시골집에 상수로 사용하는 물의 양이 어느 날부터 줄어들더니 급기야 아예 나오지 않는다. 옛날에는 옹달샘이었겠고 그 다음에는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우물물이었다가 마중물이 필요한 펌프물로 진화 과정을 거쳐, 집을 현대식으로 재건축하면서 모터를 이용해 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사용하고 있는 샘이다.

    지금은 자연환경이 전체적으로 나빠져서 지하수를 음용할 수 없다. 그래서 먹는 물은 사거나 수도사업소에서 보내주는 수돗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욕실이나 세탁은 지하에서 끌어 올린 물을 더 많이 이용한다. 그 물이 한여름에는 찬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고 추운 겨울에는 차갑지 않아 좋다.

    그런데 왜 물이 안 나오는지 전문가를 불러 원인을 알아봤다. 뜻밖에도 몇십 미터 지하에 있는 원수(原水)가 고갈됐다는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시골도 옛 모습이 아닌데, 땅속이라고 변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밭과 논에는 비닐하우스가 하얀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오이, 토마토, 딸기, 수박은 물론 블루베리, 장미까지 모두 하우스를 짓고 키운다. 그래서 커다란 집채만 한 물통들이 여기 저기 서있다. 하우스 안에서는 절기도 없어 사시사철 지하수를 빼 물을 펑펑 써가며 온갖 작물들을 키우고 있다.

    이젠 철철 흐르던 시냇물이며 동네 앞으로 여러 갈래를 치던 도랑물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물 관리를 잘 못하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가 떠올랐다.

    아랄해는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의 북서쪽에 카자흐스탄과의 사이에 걸쳐 있다. 1960년대만 해도 6만8000㎢로 그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에 해당했다. ‘아랄해’란 의미는 ‘섬들의 바다’다. 아랄해 전체에 섬이 1000여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내륙호였지만 지금은 겨우 10%, 수심이 깊은 곳에만 물이 남아 있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집단농장 계획으로, 아랄해로 흘러들어 가는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줄기를 돌려 관개농업을 했기 때문이다.

    아랄해 물을 보기 위해 지프차를 타고, 바다 밑이었던 황무지를 달렸다. 어떤 곳은 조개껍데기 가루가 섞인 모래밭이고 또 어떤 곳은 사막풀들이 우거져 있다. 평평하거나 굴곡이 진, 넓디넓어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가 해저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철갑상어와 잉어, 해초류 등 다양한 해양동식물들이 살았던 바닷속을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상상의 세계로 들어 온 것 같았다. 거친 풀들이 무성한 들판에 큰 새들이 날아다니고 여우도 나타났다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정말 믿기지 않게 신기했지만 못 올 곳이라도 온 듯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때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륙호였다는 바다가 어쩌면 2020년에는 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항구마을이었던 무이낙에는 ‘배들의 무덤’이 있다. 광활한 모래밭 위에 크고 작은 배들이 염분과 광물질이 날리는 모래바람 속에 녹슬어 가고 있다. 또 온갖 자연공해가 일어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자연환경보호는 물론 물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 ‘물같이 쓴다’라는 말이 함부로 헤프게 쓰는 의미가 아니라 아끼면서 소중하게 쓰는 의미가 돼야겠다.

    이석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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