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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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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문 열린 '지붕 낮은 집', 소박하고 간결했다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다녀오다
5월 한달간 사전 예약자에 한해 임시개방…이르면 내년 정식개방

  • 기사입력 : 2016-05-01 16: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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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1일 오전 10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번지 일명 ’지붕 낮은 집’의 문이 열렸다.

    70여명의 기자단이 우르르 몰려들어갔고 모두가 적잖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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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가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전직 대통령의 ’아방궁’이라 믿었던 그곳은 ’소박함’과 ‘간결함’을 남루한 외투처럼 걸친 집이었다.

    단풍과 매실, 영산홍이 자라는 계단식 정원이 있었고, 가녀린 햇살이 사방으로 퍼지는 좁다란 중정(中庭)이 있었다. 노무현, 7년 전 그가 살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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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내 정원을 통해 일반인들이 들어오고 있다./성승건 기자/

    사저는 외관상으로 하나로 구성된 단일체 같아보였다.

    그러나 내부는 노 전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던 ’사저동’(112평)과 경호원들이 근무하던 ’경호동’(70평)으로 엄연히 구분됐다.

    언론의 출입은 사저동까지 허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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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둘러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노 대통령은 사저를 지을 때 산의 풍광이 가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그것은 자연의 품에서 인간의 삶이 이어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주문이었다.

    역시나 고인이 된 건축가 정기용은 흙 ,나무, 강판만을 이용해 ’지붕 낮고 불편한 집’을 지었다.

    사저는 사랑채와 안채, 서재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각의 공간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와 다른 문을 열고 건너가야했다.

    한마디로 이 부끄럼 많은 저택은, 생김새는 양옥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 정신은 한옥을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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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사저 내 사랑채를 둘러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먼저 안내된 곳은 사랑채였는데, 정남(正南)향으로 앉아 하루 종일 인공조명 없이도 밝았다.
     
    주로 손님들을 맞던 공간이었는데, 노 대통령은 이 공간을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병풍을 본따 디자인된 좁고 긴 창 너머로 봉화산과 화포천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벽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 이 집의 가훈처럼 걸려있었다.

    故 신영복 선생의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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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이 공개 된 가운데 안채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책상과 모니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성승건 기자/
    안채는 사랑채 맞은편이었다.
     
    거실과 침실로 구분되었는데, 그곳은 사저 안에서 대통령 내외의 유일한 개인적 생활공간이었다.

    노 대통령은 주로 이 곳에서 작업을 했다.

    메인이미지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이 공개 된 가운데 안채에는 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액자로 걸려 있다./성승건 기자/

    민주주의 포럼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만들어 시민들과 다양한 의견을 공유한 작업도 모두 이 곳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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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이 공개 된 가운데 안채에는 가족사진과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액자로 걸려 있다. 안채는 침실 하나, 거실, 화장실, 드레스룸으로 이루어져 있다./성승건 기자/

    글쓰기용과 자료조사용 컴퓨터 모니터 2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 곳은 바로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니던가…’라는 마지막 글을 쓴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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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가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다./성승건 기자/

    서재는 중정을 끼고 안채 뒤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로 노 대통령이 독서와 집필, 보좌진들과 회의를 한 장소였다.

    1000여권이 책이 그대로 꽂혀 있었는데, 생태, 환경, 역사 등 다양한 분야가 망라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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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가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다./성승건 기자/

    실제로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했는데, 동시에 여러 권을 병독하는 독서습관 때문에 회의실과 안채, 화장실 곳곳에 책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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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가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원에는 유독 눈길이 가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앙증맞은 나무에만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었는데, 바로 제주 4·3 유족회가 보낸 산딸나무였다.

    노 대통령 재임시절 역사속에 묻혀있던 4·3 제주민중항쟁이 재조명되자 유족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보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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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부엌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성승건 기자/

    기자단이 사저에 머무른 시간은 40여분, 11시부터 일반시민 100명이 관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빠르게 취재를 마무리해야 했다.

    ‘퇴임 이후에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겠다’던 노 전 대통령의 못다 펼친 꿈이 그 집에 있었고, 그것은 사저를 받치고 있는 땅 밑의 지류(支流)를 타고 멀리멀리 나아갈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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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이 일반인에게 공개 되어 관람을 온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번 사저개방은 5월 한달간 계속된다.

    ’언젠가는 사저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뜻에 따라 유족들이 2013년 가을 노무현재단에 기부의향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7월 권양숙 여사가 인근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사저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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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둘러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노무현재단은 올해 한두차례 시범개방을 진행한 후 빠르면 내년 정식개방을 계획 중이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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