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 - 원종태
- 기사입력 : 2016-05-12 07:00:00
- Tweet
농사는 절대 짓지마라
노가다는 하지마라
책상에 앉아 펜대 굴리라
면서기라도 되어라 공부해라
공사판에 걸린 목장갑이 말을 걸어온다
아버지의 빈 도시락에는 늘
보름달 빵이 들어있었다
참으로 나온 그 빵 속에서
토끼새끼는 쿵쿵, 방아 찧고 있다
☞ 작업장에서 참으로 나온 빵 하나를 먹지 않고 빈 도시락에 담아 와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 보름달 빵 하나는 아버지가 가진 능력의 전부이다. 보름달 빵 하나의 능력으로, 책상에 앉아 펜대 굴리는 자식을 꿈꾸는 아버지는 달 속에서 방아 찧는 토끼새끼처럼 순진하다.
금수저에서 금수저가 나오고, 흙수저에서 흙수저가 나오는 세상이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라 한다. 이런 세상의 정황상 두 번째 연 목장갑의 주인은 작업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아들이리라. 이런 대물림 현상을 강요하는 ‘구조’가 이 땅의 ‘굳은’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몸이 죽은 몸이듯, 계층 순환이 되지 않는 사회 또한 사체(死體)일 뿐이다. 이중도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