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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생각한다-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6-05-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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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있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AP통신이 심층취재해서 최근 보도한 기사는 전후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코리아’라는 이미지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어두운 진실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 있는 사실들이 대대적으로 외신을 탔다. 물론 기사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가 과거 군사독재의 산물이었다는 논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는지 따져 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에도 여러 번 보도되었고, 생존자의 증언까지 책으로 출판된 뒤인지라 외신 보도의 내용이 특별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보도에서 재삼 확인한 것 중 하나는 이 형제복지원 사건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국가 행사를 위해 이른바 ‘부랑자’를 격리시키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범죄라는 사실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통해 허가되어서 88올림픽을 앞두고 정점을 찍었다. 수용인원에 맞춰 국가보조금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부랑자’라는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도 ‘부랑자’라고 속여 감금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AP통신의 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문제는 이 사건이 기이하게도 사건과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정작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로 법정에 섰던 형제복지원 원장은 감형으로 징역을 산 뒤에 풀려나와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심지어 형제복지원도 재단으로 탈바꿈해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가해자가 무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범죄가 개인의 차원에서 자행된 것이라기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모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범죄의 일환으로 이 사건을 조명한 AP통신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사건은 지금의 한국에서 잊힌 ‘미개한 과거’라기보다, 어떻게 ‘국가적 대의’라는 명목으로 인구가 관리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국가는 국민과 부랑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국민은 언제든지 부랑자가 될 수 있고, 부랑자는 ‘깨끗한 환경’을 위해 강제 격리되어도 무방하다는 위생학적 사고방식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초래했다.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위해 부랑자를 단속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당시 한국이 지향했던 ‘선진국’이라는 것이 ‘부랑자’를 비롯한 불순한 것들을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이런 당시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랑자’를 단속했던 군사정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진국’에 걸맞은 국가체계를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격리시키고 있다. 물론 이 격리의 대상이 그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격리는 국가적인 과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호 사건 당시에 정부는 ‘진짜 유가족’과 ‘가짜 유가족’을 나눠서 후자를 격리시키려고 했다. 정부에 협력하는 국민은 ‘진짜 국민’이고 비판적인 국민을 ‘가짜 국민’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도 확인되듯이, 이른바 ‘국가범죄’는 가해자 개인을 처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보상으로 환원할 수 없는 성찰이 필요한 사안이다. 국가범죄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위장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누구의 것도 아닌 국가’의 공공성을 왜곡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국가는 사실상 특정한 개인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 특정 정권이나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할 뿐이다. 정치세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이들은 공공성을 사적인 이해관계로 구겨넣고자 한다.

    국가를 위해 자행하는 범죄는 정당하다는 생각은 이런 의미에서 거대한 착각이다. 그 범죄는 ‘국가범죄’라고 불리지만, 그 ‘국가’는 만인의 국가라기보다 특정한 누군가의 가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범죄를 공모한 이들을 밝혀내야 하는 이유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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