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갈 때
중중한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쳐
나를 남자로 만든 쇠심줄, 아버지
뼈를 꺾어 검(劍)을 만들다
살을 찢어 초적(草笛)을 만들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폭포수 속
(劍)빛 인광을 뿜으며 솔향
입을 여시니, 태백의 심줄을 보라 하심이렸다
강남역 뉴욕제과 앞
장미꽃을 든 여릿한 남자애 귀고리가 가상타
불알 없는 놈!
☞시의 첫 번째 연과 두 번째 연 사이에는 오백여 년이 끼어 있다. 오백여 년의 시간은 뼈를 꺾어 만든 ‘검’을 ‘귀고리’로 만들었고, 솔향 가득한 ‘태백의 심줄’을 비닐에 싼 ‘장미꽃’으로 만들었다. 시간은 분명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듦)의 장인이다.
그렇다고 귀고리 낀 남자를 불알 없는 놈으로 정의한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 서 있다가 시인의 눈에 박힌 불쌍한 남자애도 불알은 있다. 다만 불알에 든 ‘내용물’이 문제인 것이다. 폭포수 속에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던 분의 불알 속에는 검빛 인광을 내뿜는 ‘정신’이 출렁거렸고, 귀고리 주인의 불알 속에는 ‘맹물’이 출렁거릴 뿐이다. 여하튼 불알은 분명 있다. 더 가혹한 사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맹물조차도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 어쩌랴. 이것이 불알의 숙명인 것을. 이중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