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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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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26) 김경현 한국화가와 걸어본 창녕 남지읍 개비리길

장에 간 우리 엄마 돌아오는 그 길, 바라보다

  • 기사입력 : 2016-05-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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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마음속으로 이 두 글자를 되내어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그 그리운 품, 살냄새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당신의 깊고 넓은 사랑을 늘 불효로 되갚기 일쑤였다. 세월이 한참 흘러야 겨우 한 가닥 알게 된다. 당신에게 얼마나 불효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엄마는 밤낮으로 일해도 늘 부족하기만 한 살림살이 탓에 몸져 누울 만큼 아파도 아픈 내색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행여나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이불을 끌어안고 울음을 삼켰다. 시장에 가면 고운 옷이며 신발이 눈에 들어와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도 발길을 돌리고, 저녁 찬거리 하나를 더 사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엄마는 왜 다른 친구네 엄마들처럼 예쁘게 안 하고 다니냐’며, ‘이번 달은 용돈이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며 곧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서러운 마음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속으로 또 한 번 삼켰을 게다. 그런 날이 있은 다음 날이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꼬깃한 지폐 몇 장을 봤지만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 당시엔 헤아리지 못했다. 서른의 나이가 된 소년은 지금도 여전히 속을 썩이기만 하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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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현 한국화가가 창녕군 남지읍 개비리길을 찾았다. 김경현 화가에게 개비리길은 어릴적 엄마의 손을 잡고 남지시장을 오갔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김승권 기자/

    또 다른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엄마도 밭에서 일군 땅콩이며 채소를 한 소쿠리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십리길도 넘는 남지시장으로 매일같이 나갔다. 그런 날이면 아들은 천천히 숙제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어미닭 졸졸 따라다니던 병아리를 보며 나뭇가지로 마당에 그림을 그렸다. 시장에 가 안 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며.

    ‘이걸 다 팔아야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경현이 저녁 해먹일 텐테….’ 엄마는 집에 혼자 남아 있을 아들 걱정에 채 다 팔지 못한 채소를 다시 이고 집으로 향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집.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면 소년은 ‘우리 엄마 언제 돌아오나’ 대청마루에 서서 하염없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올 길을 쳐다봤다. 엄마가 시장갔다 돌아오는 개비리길, 산과 강은 훗날 화가가 된 아들 김경현의 작품 ‘바라보다’로 남았다. 작품명이 괜스레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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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현 作 ‘바라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이따금씩 엄마 손을 잡고 따라 나섰던 남지시장으로 향하는 개비리길을 김경현 작가와 함께 걸었다. 둥그런 능선을 따라 곱게 난 길, 엄마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길을 먼발치서 바라만보다 40여년 만에 걷게 됐다고 한다. 그는 중간중간 멈춰서서 그리운 추억 하나씩을 꺼내놓으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소년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나 이순(耳順)을 바라보고 있다.

    김경현 작가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엄마’다. 시장 간 엄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해질 무렵의 소나무, 해가 뜨고 질 때 지그시 바라보던 낙동강변의 풍경들, 마당에 뛰놀던 닭과 병아리. 그 속엔 유년의 기억 속 엄마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그 시절이 녹아 있다. 그리움과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의 집이 궁금했다. 담곡마을 초입 그의 고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로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던 5년여 전 사고로 어머니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낙동강은 파헤쳐졌고, 그곳엔 큰 둑도 하나 생겨버렸다. 어린 시절 그가 마을 어귀나 대청마루에 서서 시장 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그림 속 풍경은 이제 옛것이 돼 버렸다. 엄마의 흔적 켜켜이 묻어 있는 이 집을 아들은 차마 정리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 그리운 품 손에 닿지 않지만 영영 보낼 수 없었다. 추억에 젖은 듯 그는 손때 묻은 집안 곳곳을 매만지다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멈춰버린 벽시계가, 웃고 있는 그의 모친 영정사진이, 그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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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현 화가가 창녕군 남지읍 담곡마을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집앞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효자였던 김경현 작가. 십수 년 전 일본 유학생활 중에는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진 엄마를 생각하며 슬퍼하다 위급한 사람에게 약지의 피를 내 먹이는 마음으로 자신의 손을 따 붉은 색과 섞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정화수를 떠놓고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하시던 엄마의 마음을 담아 캔버스를 채웠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엔 살아생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린다. 생전 넉넉하게 드리지 못했던 용돈을 올려놓는다. 전시가 있을 때마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엄마에게 소식을 알리러 온다.

    담곡마을길을 지나 개비리길로 가는 길 어귀, 김경현 작가가 가던 길을 멈추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어딘가로 달려간다. 산소였다. 유년 시절, 시장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자기처럼 이제는 엄마가 늘 그를 기다리고 있다며 한걸음에 달려간다. 4월의 햇살은 모자(母子)를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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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엄마 품이 그리웠던 서른의 철부지 소년은 고향으로 갔다. 자고 있는 엄마 손을 꼬옥 잡아본다. 곧 칠순이 될 엄마 손등을 매만지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우리 육남매 키우느라 이렇게 손이 거칠어졌구나.’ 행여나 엄마가 깰까 울음을 삼킨다. 이제 그만 불효하자고, 살아계실 때 많이 웃게 해드리자고 다짐한다.


    ‘이번 달 용돈은 왜 이것밖에 안 되냐’던 철부지 소년이 이제서야 조금은 철이 든 것 같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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