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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장서지인(藏書之印) - 책을 소장한 표시로 찍는 인장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05-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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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에는 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귀했다. 귀한 책을 구해 가진 사람은 책이 자기의 소유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인장을 찍었는데 이를 장서인(藏書印), 또는 장서지인(藏書之印)이라고 했다.

    자기 이름, 호, 서재 이름을 넣어서 장서인을 만드는데, 어떤 경우에는 책이나 독서와 관계된 좋은 글귀를 넣어 만들기도 하고 또 후손들에게 ‘대대로 지녀라’, ‘팔아먹거나 훼손하면 내 자손이 아니다’ 등의 글귀도 넣었다.

    장서인은 대개 당대의 이름난 전각가(篆刻家)에게 부탁해 제작한다. 또 전각 잘하는 사람이 책을 많이 소장한 친구에게 장서인을 새겨 선물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표주박형, 인체모양 등의 돌에 다양하게 새기고, 때로는 돌의 원래 모양의 한쪽 면을 갈아서 자연스럽게 새긴 경우도 있다.

    장서인은 전한(前漢) 계상여(稽相如)가 유명한 학자 유향(劉向)이 아끼는 책인 ‘등전수필(燈前隨筆)’을 빌려와서 자기 이름이 든 장서인을 찍어 돌려주지 않고 소장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는 실물은 남아 있지 않고,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중국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비담심경(阿毗曇心經)’에 찍힌 ‘영흥군인(永興郡印)’이라는 것인데, 지금부터 1500년 전의 것이다.

    장서인이 크게 유행한 것은 당(唐)나라 때부터인데, 당 태종(太宗)이 궁궐의 장서에 장서인을 찍기 시작하자 당시 문인 학사들이 다투어 본받아 유행했다.

    장서인은 책의 맨 첫 장 오른쪽 하단에 찍는다. 간혹 인장이 큰 경우 본문까지 덮지만, 붉은 색 인주를 쓰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책을 소장한 사람은 자손만대로 영원히 전해지기를 바라지만 가세가 기울거나 망하면 조상들이 애지중지하던 책을 자손들이 내다 판다. “양반집 자손이 망하면 좀이 된다”라고 하는데 책을 갉아먹는 좀처럼 조상의 책을 팔아먹고 사는 것을 비웃는 말이다.

    어쩔 수 없어 책을 팔 적에 조상의 이름에 누가 된다고 생각해 예리한 칼로 한지를 접어 만든 책장의 장서인을 도려내고 안에서 종이를 붙여 메운다. 장서인이 커서 책 본문의 글자를 덮었을 때는 본문을 훼손하면 책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뭉개어 지운다. 체면을 유지하려다 보니 책을 훼손하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장서인을 그대로 둔 채로 판다. 책이란 주인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나중에 누구 손에 들어가든 간에 누가 소장했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니까 그냥 두어도 조상에게 누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의 오래된 책은 장서인이 수십 개씩 찍혀 있는데, 역사상 유명한 사람이 소장했던 책이라는 것이 그 책의 내력이고, 또 책의 값을 높여 준다.

    일본 사람들도 장서인을 둔 채 그대로 판다. 다만 새로 산 사람이 원래 소장자 장서인 옆에 자기 장서인을 찍으면서 원래 소장자 이름 위에 ‘소(消 : 소멸한다)’자가 새겨진 도장을 찍어 소장자가 바뀌었음을 표시한다. 동양 삼국의 문화가 다 다르다.

    *藏 : 감출 장. *書 : 책 서.

    *之 : 갈 지. *印 : 도장 인.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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