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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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허진수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

“부마민주항쟁 제대로 알려 역사 바로 세울 것”
경제정의 실종·소득불균형 등 ‘제2의 부마항쟁’ 필요
재단 설립·‘부마민주항쟁정사’ 내년 목표 발간 계획

  • 기사입력 : 2016-05-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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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이 있다. 부마항쟁 피해자 명예회복에 앞장서고 있는 허진수(61)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기독청년활동가이던 허 회장은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했으며, 부림사건·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허 회장으로부터 이번 법률 개정안 통과에 대한 소감과 함께 항쟁당시 상황, 기념사업회 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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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청내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보상 등 사업계획을 밝히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난주 국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 대한 생활지원금 지급요건을 완화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소감은.

    ▲이 법률이 만들어지기까지 대표발의를 한 이주영(창원 마산합포) 의원을 비롯해 정부와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을 설득해 안건을 상정한 강기윤(창원 성산) 의원, 마산 출신 설훈(경기 부천시 원미구을) 의원 등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군과 경찰에 의해 연행 구금된 사람은 1563명이었습니다. 그중 87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됐고, 나머지 1476명은 심한 폭행과 고문을 당한 후 구금 30일 이내에 모두 석방됐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지원금 지급 대상자가 ‘1년 이상 해직된 자 또는 30일 이상 구금된 자’로 한정돼 있는 조항을 개정해서 ‘3개월 이상 해직 또는 하루라도 구금된 자’로 대상을 확대해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해직 기간은 3개월로 개정됐으나, 구금일수 30일은 그대로 존치돼 반쪽짜리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군사재판에 회부된 87명 외 1600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은 구제받을 길이 막힌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보완해 20대 국회에 다시 개정안을 상정할 것입니다.

    또한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피해자들이 보상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당시 기록 등을 확보하는 노력도 요구됩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제안한 개정안대로 통과됐을 경우 수혜자는 얼마나 늘어나나.

    ▲1979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해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를 사실상 종식시킨 결정적 도화선이 된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1000여명, 마산에서 500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최장 50여일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으로 구금되거나 고문을 당한 피해자 중 관련법에 따른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 대한 정부의 생활지원금 지급요건인 ‘부마민주항쟁을 이유로 30일 이상 구금된 자 및 재직기간 1년 이상인 해직자’에 해당하는 대상은 100여명에 불과합니다. ‘하루라도 구금된 자 및 재직기간이 3개월 이상인 해직자’를 명시한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수혜자 폭은 1000여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마민주항쟁에 어떻게 참가하게 됐으며, 당시 상황을 소개한다면.

    ▲당시 저는 한국민주화 운동에 일익을 담당했던 기독교 청년단체의 핵심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부마항쟁이 시작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학생시위대가 시내에서 모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시위대에 합류, 선두 대열에서 10월 18일까지 3일 동안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후 도피생활을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숨어 지냈습니다.

    부마항쟁은 4·19이후 가장 규모가 큰 민주화운동입니다. 특히 10월18일 시작된 마산시위는 3·15의거 다음으로 1만명 이상의 많은 시민이 모여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창동, 오동동, 양덕동, 북마산 등 시내 중심가를 시위대열이 메웠으며, 이후 10월 20일까지 계속된 항쟁기간 동안 산호파출소를 시작으로 회원, 북마산, 양덕, 역전, 남성, 자산 파출소 등이 불타거나 기물이 파괴됐습니다. 또 마산경찰서, 시청, 검찰청, 공화당사무실, MBC 등 기관도 기물이 파손됐습니다. 시위 규모는 엄청났고, 민중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37년 전 부마민주항쟁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부마민주항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부마항쟁은 억압적 정치체제 종식, 역진적 조세제도와 소득불균형 해소를 통한 경제정의 실현, 평화적 남북통일 등 다양한 요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국가권력에 의해 다수의 국민은 감시당하고 남북관계는 악화돼 평화통일의 길은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만8000달러로, 우리돈으로 3000만원, 4인가구 기준 1억2000만원입니다. 대한민국은 부자이긴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국민 대다수는 가난합니다.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유행하듯이 부는 대물림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돼가고 경제정의는 실종됐습니다. 37년 전 부마민주항쟁은 이 시대 우리에게 제2의 부마민주항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저는 부마민주항쟁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자유, 민주, 정의 이 중요한 가치들은 민중에 의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진리입니다. 이 믿음은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투사의 삶으로 향도했습니다. 1980년 이후 오랜 감옥생활, 고문, 수배 등 참혹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젊음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부마항쟁 정신이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활동과 향후 계획은.

    ▲현재 법률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 활동에 집중하면서 재단설립, 항구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항쟁참여자,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 등을 광범위하게 찾아내 그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검증해 ‘부마민주항쟁정사’를 내년 목표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부산·경남지역 주민께 하고 싶은 말은.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민주화운동 역사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부산·경남 시민 모두가 지켜가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산입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항쟁기간중 참여자 또는 사망자나 부상자를 목격하신 분은 제보를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의 다양한 제보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진호 기자 kimjh@knnews.co.kr


    #허진수 회장 프로필
    △1957년 거제에서 출생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년 중퇴 △독학학위제시험으로 대학 졸업학위 취득(경영학 학사) △NCC(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경남인권위원회 총무 △민주화운동(부림사건,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투옥(징역 2년) △광주항쟁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검거 고문당함 △경남도의회 의원(5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경남연대 상임대표 △6월항쟁 2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부마민주항쟁특별법 제정 경남연대 상임대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9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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