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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울림밴드예술단 손남기 단장

음악 나눔으로 ‘따뜻한 울림’ 전하려 합니다
고향 사천서 음악봉사

  • 기사입력 : 2016-05-2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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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안은 선물하고 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소외된 이들에게 베푼다는 생각에 우쭐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연말정산에 쓸 기부금 영수증 챙기려는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오히려 제가 축복받는다는 느낌입니다. 순박한 웃음과 즐거워하는 그들에게서 되레 위로와 격려 받으며, 또 새로운 용기를 얻습니다.”

    사천시 사천읍 수석리에 소재한 울림밴드예술단 손남기(58) 단장. 1980년대 중반 그룹사운드 ‘비둘기가족’의 멤버로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했던 손 단장이지만, 50대부터 낙향해 음악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능숙했고, 사천초등학교-사천중학교-진주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계속 악대부 생활을 했습니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80년대 초반 국내 최고 실력자들만 갈 수 있다는 논산훈련소 군악대에서 음악을 계속했습니다. 정통 음악을 한 덕분으로 군악대 시절 교육계를 맡았는데, 당시 연예인들도 상당수 만날 수 있었죠. 가수 겸 MC로 활약했던 이택림 (59)씨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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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할 바엔 우리나라 최고가 돼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던 손 단장은 전역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된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도 재즈음악을 배우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키보드와 함께 수준급의 테너·엘토·소프라노 색소폰, 트럼본 등의 연주 실력은 이때 연마했다. 그룹사운드 ‘비둘기가족’의 멤버로 활동한 것도 이 시기로, 4년간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화려한 연예계를 경험했다.

    “나름 음악적으로 성공하고, 결혼도 하고, 제 또래에 비하면 일찍 경제적 여유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고민이 커졌습니다. 지금은 다소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소위 ‘딴따라’에 대한 사회인식이 아주 낮았잖아요? 또 자녀 교육을 생각하니 좀 더 안정적이고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결국 1990년께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음악을 등진 손 단장은 20년 이상 이벤트 회사 운영, 실내인테리어 사업, 아파트 분양사업 등을 하면서 가정을 꾸렸다. 자식농사(?)를 잘 지었으니 후회될 건 없었지만, 지난 20년 동안 손 단장의 마음 한편에는 헛헛한 바람구멍이 나 있었다.

    “2012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생인 (손)남철이와 변천석 등 고향 후배들이 찾아왔습니다. 좋은 재능을 더 이상 썩히지 말고 이제 고향을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복귀를 권유했습니다. 많이 망설였죠. 하지만 삼고초려하듯이 찾아온 후배들에게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마침 사천읍성 600년을 기념하는 음악공연이 수양공원(옛 산성공원)에서 있었는데, 그게 복귀 공연이었죠. 색소폰 연주가 끝난 뒤 300명 정도 되는 청중들의 환호성을 듣는 순간 20년 이상 애써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확 올라왔습니다.”

    얼마 뒤 울림밴드를 결성했다. 많은 사람이 듣고 느낄 수 있고, 그들의 마음에 울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밴드 이름을 ‘울림’으로 지었다. 1년여 준비 끝에 2014년 8월 공식 창단해 현재 연주자 9명, 가수 5명 등 모두 14명이 활동하고 있다. 손 단장과 같은 전문 음악인도 있지만 조선소 협력업체 사장, 건축가, 장의사, 노동자, 교사 등 여럿 멤버들로 구성된 울림밴드는 다양한 음악으로 투영되고 있다.

    “많이 주저했습니다. 고향이란 편하고 따뜻한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상당히 조심스러운 곳이잖아요. 적지 않은 나이에 고향에서 음악을 다시 한다는 건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두 가지로 명료해지면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이나 소외계층 등 문화예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음악봉사를, 지역의 청소년·청년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손 단장은 울림밴드 공식 창단 전인 2013년 10월 하동 노량실버타운을 시작으로 음악봉사활동에 나섰다. 지금처럼 완성된 밴드는 아니었지만, 5~6명이 일요일에 모여 연습하고 돈도 갹출해 선물을 사 노인요양시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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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림밴드예술단이 하동 노량실버타운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가수 이미자씨가 부른 ‘아씨’를 연주하는 도중 한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곡을 연주하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음악봉사를 결심했지만 처음 어르신을 대하는 순간 ‘이분들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아~, 앞으로 내 음악인생이 가야할 길은 바로 이 길이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손 단장은 3년째 음악봉사 활동에 열심이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추모기간 몇 개월을 빼고는 한 달도 빠지지 않았다. 노인요양시설, 복지시설과 함께 진주교도소, 장애인 행사장 등도 찾았다. 또 일반 시민을 위한 음악회도 매년 한 차례씩 개최하고 있다. 특히 오는 7월엔 복지·요양시설 후원금 모금을 위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시작은 음악재능 기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음악이란 도구를 통해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는 마음입니다. 음악이란 어떤 제약도 없는, 모든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는 매개체가 되잖아요. 음악은 소통이고 공감이죠. 무대 공연을 통한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면서 소외계층에게는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피는 나눔입니다.”

    손 단장은 여전히 음악에의 자존감이 강하다. 어릴 때 꿈인 최고의 연주가는 못 됐지만, 최고의 음악인이 되길 포기하지 않았다. 지역의 재능 있는 후배를 발굴해 최고의 연주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싶다. 또 사천을 비롯한 서부경남 출신 음악인들을 모아 1년에 한 번 정도는 시민들을 위한 팝오케스트라 공연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정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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