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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존재한다- 박기원(시인)

  • 기사입력 : 2016-05-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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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들러서 봉투 집어넣고 상주에게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입에 발린 인사 대충 건네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이 준 껌을 나눠 씹으며 헤어졌다. 단물 빠진 껌을 버릴 데가 마땅찮아 입천장에도 붙였다가 혀 밑에도 숨겼다가 별별 궁리하던 중에 문득, 남는 것은 단지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집에까지 와서 버린 껌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찐득해졌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한때 나를 고립시키던 책 속의 주인공도, 일찍 세상을 등진 친구도, 일본에 있는 딸아이도 내 가슴에서 여전히 서걱대고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사라진다고 해서 아주 없어진 게 아닐 터다.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굴던 마음이 먼저 돌아서서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하고파도 하지 못한 말들이 비워둔 자리에는 잠깐 곁눈질하는 사이 주름이 앉아 있기도 하니 말이다.

    나의 마지막은 과연 무엇으로 남게 될까? 1(삶)에서 1(죽음)을 뺐는데 답이 0이 아니라 1이라는 이상한 논리는 적어도 종말에는 그 1이 무덤이 될 수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게 될 수도 있으니 이 논리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래도 무덤을 만들어놓고 나를 그리워하도록 하는 일은 제발 없길 바란다.

    왜냐하면 차를 타고 무덤을 찾아오는 동안 그 그리움은 반감될 테니까 말이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무덤이 있어도 기억에서 지워질 사람은 지워지고 무덤이 없어도 남을 사람은 남는 법이다.

    하물며 길에 껌 뱉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온 산에 덕지덕지 껌 딱지를 붙여놓아서는 안 될 일이지 않는가?

    짧은 봄볕 같은 우리네 인생. 아껴 쓸 수도 함부로 쓸 수도 없는 노릇임을 아는 덕분인지 요즘 기부문화가 왕성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돈으로 하는 기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에 굶주리지 않고 기회에 허덕이지 않게 삶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고 나누는 재능기부도 각광받고 있다.

    작년 초, 정부에서 운영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나와 아내가 함께 신청을 하고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을 받았다.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그나마 참 다행한 일이다 싶다. 어쨌거나 기증등록 후로 가끔은 내가 너무 고요해서 내 그림자를 괜히 문질러보기도 하고, 어쩌다 내가 막막 그리워서 나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는 일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다음은 장기기증 서류를 보내던 날 썼던 글이다.



    몸을 빌려 이 별에 와 이룬 것도 없으면서 / 오늘을 축내고 있는 나에게 밥 사 먹이고 / 이 별에 오기 전에 작성하고왔을 것 같은 / 장기기증신청서에 나를 부치고 돌아온 날이다

    (중략)

    오늘은 나를 돌려줘야 할 때를 알아버린 날이다 / 가슴 쪽으로 그림자를 끌어당겨보는 내가 비어있다 / 나를 받고 올 자여, 부디 내 그림자를 잘 헹궈 쓰시게 - ‘위탁의 조건’ 중에서

    박기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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