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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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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그리운 냄새- 서휘(창원문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6-05-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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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취가 진동하는 기사들이 뉴스에 넘친다. 또 두루뭉술 봉합될 것이 뻔히 보임에 애써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가고자 한다. 제법 초여름 같이 햇빛 쨍쨍한 오늘은 유난히 아버님의 체취가 그립다. 아주 어린 시절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어머님께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떠주신 회색 스웨터를 입으신 채, 꽁꽁 얼은 제 얼굴을 꽉 안아주시던 아버님의 냄새가 오늘은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담배와 땀 냄새에 숨이 막히고, 거친 스웨터의 질감에 얼굴이 따가워서 빨리 밀쳐내려 몸부림쳤었는데, 지금은 그 냄새가 정말 그립다.

    갑자기 수십 년 동안 경험했던 과거의 수많은 체취, 냄새들이 상상되며, 그 시각 그 곳의 냄새가 생생히 되살아나 코끝을 절로 흠흠 또는 찡그리게 한다. '봄에는 어떤 냄새가 좋았지? 여름에는, 가을에는 그리고 겨울에는 어떤 냄새가 있었지?' 하며 지나간 그 시절의 수많은 모습들을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계절마다의 고유한 냄새를 생각하니 그 향기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인연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싫어했던 냄새들에도 그리운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떠오를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곧 그 냄새들을 생각하니 그저 모든 게 추억 속의 사연들인지라 -각 냄새마다에 얽힌 사건들로 인해- 곧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일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재채기가 나게 하는 약간은 촌스러운 아낙네의 쥐 잡아먹은 듯한 붉은 입술과 싸구려 분 냄새, 그늘진 골목길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골방 노인 분들의 애처로운 슬픈 냄새, 한여름 좁은 골목을 누비던 똥 바구니에서 풍기던 냄새, 장마철 청과물 시장의 야채 썩는 냄새, 뜨거운 한 여름의 재래식 변소에서 숨이 턱턱 막히게 하던 고약한 냄새, 온 집안을 비린내로 덮어버려 교복에 냄새가 배일까 걱정하던 고등어구이 냄새, 집집마다 놓여있던 대문 옆 시멘트 쓰레기통에서 풍기던 악취 등이 생각난다. 당시의 고약했던 냄새들이 이제는 그 시절의 사람들과 모습들을 떠오르게 함에 싫음 보다는 오히려 정겹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냄새에는 좋아함이나 싫어함과 상관없이 그 시절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냄새에는 외면하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기에 당시의 팍팍했던 삶들과 함께 그리움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그래서 나와 동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또 다른 냄새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개구쟁이들의 함성과 어우러져 온 동네에 뿌연 안개의 장막을 드리우던 요란한 소독차의 연기 냄새,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배급되는 단단하고 고소한 노란 빛의 옥수수 빵 냄새, 아주 가끔 어머님 대신 연탄불 갈 때 맡았던 한겨울 밤의 독한 일산화탄소 냄새, 고교 시절 친구의 시골 집 뒷산 위에서 바라보았던 초가집들 굴뚝 위의 밥 짓는 연기, 만원 버스의 튕겨나갈 듯한 승객을 휘청하는 순간 밀어 넣고 문을 닫던 솜씨 좋은 안내양 누나의 아침을 여는 냄새, 일찍 귀가하면 볼 수 있었던 안방에까지 진출해 어머님과 이모의 지갑을 열게 하던 보자기 장사꾼의 외제 화장품 냄새, 한겨울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 찾아가던 후미진 만화방에서 풍겨나는 연탄난로 위 콤콤한 오뎅 국물 냄새,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난로 위에 가득 쌓인 수많은 도시락에서 풍기는 맛있는 복합적인 냄새,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맛볼 수 있었던 자장면과 탕수육의 구수한 냄새 등 수많은 추억의 냄새들이 떠오른다.

    이들 냄새에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아련한 아픔과 함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아날로그 시대의 향취가 -칙칙 거리는 화면 속 '다시 보는 대한 뉘우스'나 누렇게 탈색된 옛 흑백 사진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때는 그랬었지!'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냄새를 통해 추억을 반추하다보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때로는 입맛을 다시면서 때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기꺼이 그 냄새를 맡고 싶다. 애써 악취가 진동하는 기사들을 외면한 채, 장미향 그윽한 교정 위 붉게 번지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느덧 당신의 나이가 되어버린 아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님의 냄새를 그리워합니다.

    서 휘 (창원문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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