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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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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9) 함양독바위와 폐사지 탐방

김종직 발자취 따라 ‘폐사지 탐방길’ 거닐면 답답한 세상사 잊힐까
바위병풍 앞엔 기와 파편만 남아
해발 755m에 쌓인 공깃돌 5개

  • 기사입력 : 2016-05-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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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44년 전인 1472년, 조선의 지성 김종직은 4박5일 일정으로 지리산에 올랐다. 그리고 당시의 지리산 문화를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물인 지리산 산행기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김종직은 조선 초기 성리학의 대가로 함양태수 시절, 지리산을 늘 가슴에 담고 동경하다가 마침내 산행을 감행했다. 그의 산행기록을 보면, 함양관아를 출발해 엄천을 건너 함양독바위 자락의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에 들렀다가 독녀암(함양독바위)을 돌아보고 인근의 고열암에서 첫날 밤을 보낸다. 이후 그는 새봉, 청이당, 영랑재,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

    그의 기록을 보면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청이당(당집), 성모사(사당), 향적사, 영신사 등의 여러 암자가 등장하는데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렵거나 폐허가 되어 기와 파편만 흩어져 나뒹굴 뿐이다. 이번 탐방은 함양독바위를 돌아보고 독바위 자락의 김종직이 거쳐 간 지장사와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등의 폐사지를 찾아보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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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인이 혼자 수행하다가 득도해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는 함양독바위. 독녀암이라고도 불린다.

    ▲지리산 피사의 사탑 ‘공개바위’

    탐방팀은 엄천교를 건너 산청군 금서면 곡리 산중턱의 법전암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봄이 무르익어 연초록 세상이 펼쳐졌지만 지리산 높은 곳은 아직 회색빛이다. 법전암 옆 낮은 고개를 넘어 500m 오르면 지리산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공개바위가 있다. 군계능선 자락, 해발 755m 고지에 위치한 공개바위, 높이 12.7m로 공깃돌 5알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듯하다.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하다가 여기에다 쌓아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공개바위를 돌아보고 뒤쪽의 군계능선으로 오른다. 이 능선은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휴천면을 가르는 경계이다. 능선에 올라 남쪽으로 베틀재, 상내봉을 향해 오른다. 좌측으로 오봉마을 하산길이 열려 있는 베틀재를 통과하고 산행 2시간여 상내봉 부근의 1214봉에 올라 상내봉 삼거리로 향한다. 삼거리 가기 전의 조망처 오뚝이 바위에 올라보니 지리산 동북지역 주변산군이 조망된다. 동부능선과 왕등재, 그 너머로 웅석봉, 달뜨기능선, 왕산, 필봉 등. 잠시 후 상내봉 삼거리에 이르는데, 우측은 벽송사로 내려서는 벽송능선 길이고, 좌측은 싸립재를 거쳐 새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삼거리 앞의 조망바위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새봉과 동부능선, 하봉능선, 써리봉, 중봉, 천왕봉이 오롯이 조망된다. 김종직은 이 길을 따라 천왕봉에 올랐다. 뿌연 연무가 아쉽지만 김종직 루트가 한눈에 드는 광활한 조망이다.

    ▲바위가 숲을 이룬 함양독바위

    상내봉 삼거리를 되돌아 나와 함양독바위로 향한다. 잠시 언덕을 내려서면 비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데 바로 안락문(安樂門)이다. 선계와 하계를 구분 짓는 관문일까. 안락문을 통과하여 함양독바위 바위군(群), 또 다른 별세계, 바위 숲속으로 들어선다. 거대한 암봉군의 함양독바위는 진주독바위, 하동독바위와 더불어 지리산 3대 독바위로 불린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독녀암’으로 등장하는데, 한 여인이 이곳에서 홀로 수행하다가 득도하여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돌기둥이 숲을 이룬 듯 솟아있다. 매달아 둔 줄을 잡고 중간부분에 올라보니 단애 절벽이 오금 저리게 하고, 지리산 동북부지역이 모두 발아래다. 잠시 조망하고 암봉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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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슬이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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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열암터.

    ▲김종직이 첫날 밤을 보낸 고열암

    함양독바위를 뒤로하고 김종직의 흔적이 깃든 암자터. 흔히 일컫는 지리산 동부지역의 칠암자 폐사지를 모두 탐방하기로 한다. 첫 탐방지는 독바위 바로 옆의 신열암터다. 김종직이 독녀암을 둘러보고 쉬었던 곳, 독바위에서 솔봉능선 방향으로 100여m 거리에 있다. 뒤로는 병풍 같은 바위가 둘러져 있고 석축 위 공터에는 기와, 질그릇 파편이 흩어져 있다.

    신열암 터에서 다시 서쪽으로 150여m 이동하면 고열암 터가 나오는데 기둥처럼 솟은 선바위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김종직이 산행 첫날 밤을 묵었던 곳이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 흔적조차 희미해졌지만 김종직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한밤중 구름과 희롱하는 달의 정취에 흥이 겨워 시 한 수를 남기기도 했다. 고열암 터를 둘러보고 솔봉능선 자락의 선녀굴을 탐방한다. 선녀들이 내려와 바위틈 샘물로 목욕했다는 전설의 선녀굴, 하지만 근세에는 마지막 빨치산 3인 부대, 정순덕과 이홍희, 이은조의 은신처였고 이은조가 사살된 곳이기도 하다. 선녀굴과 옆의 암자터를 돌아보고 솔봉능선을 가로질러 유슬이굴로 향한다.

    선녀굴에서 20여 분 거리, 솔봉능선과 황새날등 사이에 유슬이굴이 있다. 천연동굴로 한때 유슬이란 사람의 기도터이기도 했는데 북향이라 습한 기운이 많이 느껴진다. 잠시 쉬었다가 다섯 번째 암자터, 선열암터로 향한다. 황새날등을 가로질러 10분가량 사면을 약간 돌아 올라 선열암 폐사지에 이른다. 이곳은 양쪽으로 병풍바위가 마주보고 섰다. 그 사이 공터에 암자가 들어섰던 모양이다. 김종직이 쉬어간 암자 중 하나로 산행기에 이곳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잠시 돌아보고 금낭굴로 향하는데, 길은 험하고 길 잇기 애매한 곳이 많다. 시작부터 작은 암벽을 내려서야 한다. 그나마 끈이 하나 달려있어 잡고 내려선다. 제법 가파른 사면 길을 약간 내려서는데 사람 흔적이 느껴지는 작은 암굴도 보인다. 사면길을 내려서서 횡으로 너덜 길을 걸어 금낭굴에 도착한다. 금낭굴은 독바위 자락의 황새날등과 상대날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함양독바위 아래에는 3개 능선이 부채살처럼 뻗어 있는데, 아래에서 볼 때 좌측이 상대날등 능선으로 독바위 위쪽의 1193봉에서 분기되어 독바위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가운데, 독바위 바로 아래로 황새날등이 뻗어있고, 그 우측으로 송대, 세동마을로 이어지는 솔봉능선이 엄천강을 향해 뻗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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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낭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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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사터.

    ▲금낭굴과 지장사 터를 돌아보고

    금낭굴은 거대한 바위자락에 형성된 암굴이다. 주변에는 기와와 옹기그릇 파편이 흩어져 있다. 석굴 아래쪽에도 너른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큰 규모의 암자가 들어섰던 모양이다.

    굴 안에서 올려다보니 천장이 뚫려 빛이 스며들고, 천장 틈으로 큰 돌들이 하늘의 혹성처럼 박혀 있는 모습이다. 금낭굴을 찬찬히 돌아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마지막 일곱 번째 폐사지 지장사로 향한다. 지장사 터는 맨 아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상대날등으로 빠져나와 잠시 능선을 걸어 내리다가 좌측으로 분기된 지능으로 10여 분 진행하면 산죽사면 자락에 지장사 터가 있다.

    몇 군데 석축이 보이고 기와 파편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펑퍼짐한 주변 지역이 꽤 넓다. 제법 큰 절이 들어설 수 있는 규모이다. 독바위 자락의 여러 암자들은 지장사의 부속암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지장사 터를 살펴보고 인근의 박쥐굴에 들렀다가 하산한다. 박쥐굴은 폐사지는 아니지만 이전에 한때 빨치산 비트로 이용되기도 했고 박쥐가 많이 살아 박쥐굴이라 부르는데,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공간이 제법 넓은 바위동굴이다.

    박쥐굴을 끝으로 한꺼번에 여러 곳을 탐방하는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노장동골로 내려서서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깊숙한 골짝에 자리 잡은 적조암에 도착하며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

    세월의 부침에 따라 역사의 흔적들이 수없이 명멸해 갔지만 예나 지금이나 숱한 사람들이 동경과 경외심을 갖고 찾는 지리산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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