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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운생이샘, 은상이골샘, 은상이샘-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06-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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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야화(馬山野話)’는 언론인으로 알려진 목발 김형윤(1903~1973)이 남긴 글을 후배들이 편집해서 펴낸 ‘유고집’이다. 이 책은 근대 마산의 역사와 일상 문화를 살펴서 141개 꼭지로 촘촘하게 나누어 쓴 글을 한 책으로 모아 놓은 것이다. 월초 정진업 시인이 쓴 발간사에 따르면 “실화나 사실들이 비록 예술 분야의 문학은 아니라 할지라도 시사적 문헌으로서 당당 기록문학 권내에 들어”갈만큼 하찮은 낙수거리에서 무거운 국제관계까지 사건별로 다양한 주제와 성격의 글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지닌 값어치는 지역 연구에 있어 소중하고 오롯하다. 글쓴이가 반평생 넘게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탓에 문장 가운데 드문드문 일본식 상용한자를 사용했다는 게 흠일 수는 있지만.

    이 책 가운데 옛 마산의 물맛 좋은 우물들을 소개한 ‘공동우물순력’이란 글이 있다. 글머리는 “마산은 옛날부터 산수가 좋아 술맛을 가로되 제호미(醍味:‘제일의 맛’이란 뜻)라는 정평이 있다. 이것은 오로지 양조장 경영주의 인격이라 할 수 있으며 술을 빚는 두씨(杜氏:술을 만드는 직인)의 심오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근본을 따져보면 이 지방의 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양조장이 15개나 집중되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어서 “술이 나쁘면 음주자의 주벽이 거칠게 된다”면서 “감천(甘泉)이라는 소부락에서는 아직까지 주정뱅이나 범법자가 없다는 것을 보더라도 사람의 됨됨과 성격은 산세와 수세의 영향에 좌우된다”고 뭔가 미심쩍어 보이는 물의 사회적 효용까지 주장한다. 그리고 마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동우물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일일이 손꼽는다. 먼저 지목한 “‘몽고정(속칭 광대바위샘)’과 ‘은상이골샘’ 등 4개처 우물은 고려연합군이 굴착(掘鑿)한 것이며, 오동동 해변에 있는 ‘갈밭샘’은 어느 때 생긴 것인지 불명하다”면서 마산포 시절 팠던 ‘통샘’ ‘수통샘’ ‘박석거리샘’ ‘논샘’ 등등 빼곡이 나열하고 있어 옛 마산이 ‘우물의 도시’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지금도 여몽연합군이 팠다는 몽고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으나, 오동동의 ‘갈밭샘’은 빌딩 그늘에 갇혀 우물인지도 모를 정도로 초라한 형태로 남아 있다. 다만 ‘은상이골샘’은 지역 출신 시조시인 노산의 이름을 딴 ‘은상이샘’으로 바꾸고 도시 정비 차원에서 1999년 원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 조악한 우물 모형으로 만들었다. 실제 우물은 지상에서 사라졌고 가짜 우물 하나가 들어선 것이다.

    최근 또다시 일고 있는 ‘은상이샘 갈등’ 보도를 접하면서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가 공개한 자료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10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따르면 은상이샘 곁을 흐르는 교방천을 당시 ‘운상천(雲上川)’이라 했고 사람들은 ‘운생이내’로 불렀다는 기록이다. 자연스레 그 천변의 샘이름도 ‘운생이샘’으로 불렀을 터. 이 ‘운생이샘’과 목발이 기록한 ‘은상이골샘’과의 변이과정의 추이도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렇게 자료를 들이밀며 고증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에 비해 마산문단은 경신년 글강 외듯 “문학은 문학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잔나비 밥 짓는 소리로만 떠들썩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편벽되게 ‘문학’으로만 한정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는 지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산 생가터가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음가의 유사성만 가지고 노산 집안의 우물이라고 우겨대는 일부 문인들의 논리도 여러 자료를 통해 비정해 정확한 명칭을 찾아내야 한다.

    북마산파출소 뒤에 있던 진짜 ‘은새이샘’을 학교 다니느라 매일같이 지나다녔던 토박이인 내 생각은 한결같다. 물 없는 우물은 우물도 아니다, 파묻어버려라! 더군다나 가짜임에랴!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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