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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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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어머니동상- 이석례(수필가)

  • 기사입력 : 2016-06-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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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한 집안의 노비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스승이며, 살아있을 때는 온 세상이 태산이지만 죽으면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된다.’

    이십여 일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면서 이 말을 생각했다. 발인을 하는 날은 아주 따뜻한 봄날이라 선산에는 나비들도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꽃들도 피었다. 가족들의 슬픔 속에 어머니 장례는, 이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묘에 합장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의 부모는 우리나라 역사의 수난 속에 질곡의 시대를 사셨다. 일제 강점 하에 태어나서 일본말을 배우며 성장했고, 학교에서는 일본인 선생에게 교육을 받았다. 일제의 만행이었던 정신대로 끌려갈까 봐, 어머니는 18세에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했으나 얼마 안 있어 6·25전쟁이 일어나고 피난살이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남편은 군인이 돼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6년 정도 군대에 계셨다. 공산군을 무찌르면서 두만강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다시 후퇴를 했다. 아버지가 참전용사로 공을 세우며 나라를 위해 싸울 때 어머니의 생활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야기는 상상이 안가는 옛날 옛적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밑바탕에는 부모세대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받으신 국가유공훈장은, 그 속에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의 희생과 인내도 들어 있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겼다. 마침 우즈벡에 사는 이국의 제자가 자신의 결혼사진을 SNS로 보내왔는데 그 사진 배경이 ‘어머니동상’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결혼식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그 지역에 있는 ‘어머니동상’이다. 어머니가 고뇌에 찬 모습으로 앉아 있는 큰 동상인데, 이 어머니상이 사마르칸트에는 독립광장에 있고, 또 우즈벡의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있다.

    신랑과 신부는 어머니상 앞에 준비해 온 커다란 꽃다발을 바치고 경건하게 인사를 한 후 사진을 찍고 그리고 식장으로 간다. 결혼이라는 새 출발을 하면서 남자는 남편과 가장으로서, 여자는 부인이며 장차 어머니로서의 다짐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동상에는 ‘당신은 항상 제 가슴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앞에는 불단지에 담긴 불이 펄럭이고 있다. 어머니상은 전쟁에 목숨을 바친 남편과 자식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조국을 위해 바친 고귀한 희생을 후손들이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어머니동상이 만들어졌고, 그 앞에는 사시사철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옆에는 여러 개의 굵은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건물이 있다. 그 건물 회랑에는 책처럼 펼쳐 보게 돼 있는, 철판으로 된 커다란 명부가 일렬로 세워져 있다. 그 철판에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사망이나 실종 날짜가 적혀 있다. 그 명부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 아픔을 지닌 어머니의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껴진다. 가족과의 사별은 누구나 다 슬프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이국의 어머니동상이 겹쳐져 슬픔을 다소 억누를 수가 있었다.

    이 석 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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