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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16) 산청 (5) 오부면 일물마을 ~ 산청읍 성심원

걷는 곳곳, 마음 위안 얻는 ‘오지의 삶’

  • 기사입력 : 2016-06-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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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오부면 일물마을. 도로가 없어 교통이 불편하고 물질적으로 부족하지만 옛날부터 순박한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던 마을이다.


    ‘봄날은 간다’는 애절한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계절의 여왕 5월은 행복이다. 어디든 길을 떠나면 한가롭게 보이는 농촌도 농사 준비에 분주하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어느새 새순이 주저리주저리 달렸다. 작은 흙담과 자투리 소나무로 지은 60년이 넘은 빛바랜 조그만 오두막 마루에 앉았다. 뽕나무와 감나무 순을 따서 주전자에 끓였다. 자연이 주는 향긋한 차(茶)가 된다. 마루에 앉으면 밤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5월은 모기 없는 산골 마을이라 밤이면 고즈넉한 풍경이 가득하다.

    항상 부담 없이 머물고 떠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새삼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오두막 작은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방에 누우면 등에 천천히 은은하게 전해오는 따뜻한 촉감과 천장의 자연스러운 서까래가 정겹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명예나 지위가 오를 곳이 없는 곳까지 오른다고 행복의 가치도 함께 오르지는 않는다. 산을 오를 때도 내려올 때를 생각해야 한다. 항상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행복의 가치는 결코 거창한 곳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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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물마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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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물마을 주민들

    ▲오지의 삶, 오부면 일물마을의 행복한 사람들

    5월은 밤낮의 길이도 적당하고 날씨도 맑고 자연이 푸르니 여행에 최고의 계절이다. 발길 닿는 곳이 모두 행복한 여행이다. 근래 독특한 방법으로 여행을 하는 모습이 있다. 종교를 가진 어떤 분은 수행하는 마음으로 성당이나 절집, 교회를 순례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자연과 만나는 여행으로 불안과 분노를 삭이고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 교직을 명예롭게 퇴직한 지인은 아내와 함께 전국의 5일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떠들썩한 시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행복을 얻고 있다. 산을 좋아했던 선배는 퇴직하기 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우리 산 100군데를 선정해서 찾아다니고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물질의 발달에 따른 풍요로움이 결코 정신적인 안정이나 삶의 가치 충족을 전부 가져다 주지 못한다.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는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다. 산청군청 홍보담당의 추천으로 오부면 방곡천을 따라 지난 길을 헤매며 일물마을을 찾았다. 일물마을은 옛날에는 도로가 없어 교통도 불편하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했다. 그래도 옛날부터 순박한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던 마을이다. 이번에 다시 일물 마을을 찾아가면서도 길을 잃고 헤맸다. 현대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내비게이션도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마을 초입에 느티나무가 서있고 담배를 건조했던 건조장과 연자방아 받침이 근대문화유산처럼 역사를 안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다. 지난 1월 마을회관으로 찾아갔더니 노인정에서 1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노인회장 곽노경(81)씨가 반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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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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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건조장

    기록에 따르면 일물마을은 산의 형태가 윗마을 상동(上洞)은 반월(半月)을 닮고, 하동(下洞)은 구름이 떠 있는 모양과 같아서 운전(雲田)이라 했다. 나중에 월륵(月勒)이라 부르다 조선말에 어느 현감이 ‘月’자를 파자(破字)하여 일물(一勿)이라 했다고 한다. 얼리기 또는 일물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일물동과 외일물동 일부를 합해 일물리라 하고 오부면에 편입했다. 마을길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 마을이 총 22가구인데 길 위쪽 17가구, 아래쪽 5가구이고 주민은 52명이다. 옛날에는 담배 농사와 양잠을 했으나 지금은 벼농사와 오미자농사를 하며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마을잔치가 있었다며 냉장고에 아껴 뒀던 맛있는 음식을 후하게 한상 가득 차려 줬다. 노인회장 곽씨는 물 좋고 공기는 좋으나 사람 살 곳은 못 된다고 했다. 곽씨도 슬하에 2남3녀를 두고 20년 동안 객지 생활을 했고, 고향을 떠나 살아보니 정도 안 들고 친구들도 없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곽 회장과의 이야기는 6·25전쟁 당시 혼돈의 시대를 넘어 한총련으로 수배를 받던 아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전시에는 낮에는 국군의 땅이고 밤에는 적지가 됐다고 한다. 곽 회장의 이야기는 커피가 3번이나 들어와도 끝나지 않았다. 도로를 개설할 때 이야기는 드라마 같았다. 원방마을에서 일물마을까지 1.8km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전 마을주민이 똘똘 뭉쳐 곡괭이와 삽, 지게를 동원해서 작업을 했다. 횃불을 밝히며 밤낮으로 작업을 했단다. 워낙 길이 험해 도로 개통 때 국회의원이 경찰서장 지프차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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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

    산을 넘는 가파른 도로는 2015년 포장이 됐다. 지금은 힘들었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비단길이다. 대학생들 하계 봉사단도 다녀갔고 한때는 마을회관에서 야학도 운영했다. 노인회 총무 이강혁(79)씨는 5년 전 인근 산을 구입해서 서울에서 귀촌을 했다.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산골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이 컸다. 처음 일물마을을 갔을 때 목소리도 크고 친근감을 줬던 민판규(21)씨를 만나고 싶었다. 박순희 (58)씨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는 당찬 일물리 이장이다. 민판규씨는 박순희씨의 셋째 아들이다. 어릴 때 아파 약간 장애가 있다는 판규씨는 인사도 잘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산청 묵곡마을에 살았던 박순희씨는 민병곤(62)씨와 중매로 1981년 결혼했고, 1982년 도시생활을 접고 시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일물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판규씨는 산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혜광학교에서 전공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박순희씨는 꽃다운 나이에 시집오던 날 산길을 걷고 또 걷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행여 일물이 나오려나 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인생길처럼 험한 산길을 넘고 또 넘어야 했던 추억이 가득하단다. 마을 안내를 자청한 판규씨를 따라 빈집이 많은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을 내 집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비어 있는 집도 할머니가 병원에 갔다는 등 소상하고 재미있게 일러 줬다. 일물마을도 농사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고향에 다니러 왔다는 김건생(58)씨와 김재환(56)씨도 산비탈 논으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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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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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교

    ▲바람 불어오는 웃음꽃 피어나는 마을 성심원


    발길은 성심원으로 향했다. 성심원(원장 오상선(바오로 신부)은 산청읍 산청대로 경호강변에 있다. 1959년 6월 재단법인 프란치스코교회(천주교 작은형제회)가 설립해 한센인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성심원의 설립 목적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며, 복지증진을 통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간다’이다.

    성심원 앞을 흐르는 경호강은 여름이면 휴가를 즐기는 래프팅 행렬이 가득하다. 봄·가을에는 국민운동으로 자리 잡은 지리산둘레길 걷는 사람들도 그저 무심히 지나간다. 늘 마음 속에 있던 성심원에 마산대학교 물리치료과 이한기(62) 교수가 2015년에 이어 올해도 학생 32명을 인솔해서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다. 동행하기로 했다.

    경호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성심교를 건너면 지리산 둘레길 표지판이 먼저 반긴다. 성심원으로 들어서니 유난히 따뜻한 봄 햇살 속에 여러 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만들고 있었다. 한센인들의 마을 소록도에도 다녀왔지만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성당에서는 전날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미사가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손가락 마디가 없는 한센인의 손을 잡아 보았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가득 전해져 왔다. 성심원 부원장 신현재(50) 다이문도 수사가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22개 동의 건물이 가정사, 요양원, 전문요양원으로 나눠져 있다. 성심원에 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2016년 6월 함께하는 성심인애축제가 열린다.

    마산대학교 나누미 봉사단원들의 첫 번째 덕목은 성심원에 불편을 주지 않는 것이다. 봉사자 숙소에서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 해결했다. 단원들은 4개 팀으로 나눠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한센인들의 말벗이 되고,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식사를 도와주고 산책을 함께하고 부식을 다듬으며 청소를 하는 등 다양한 산교육을 체험했다. 적선과 봉사, 나눔, 사랑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실천은 그리 녹록지 않다. 신현재 수사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심원을 나서며 참 내 삶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산대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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