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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풍수지리] 우리는 왜 죽은 자를 또 죽이나

  • 기사입력 : 2016-06-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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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왕릉은 고려조의 도성이었던 개성 부근에 주로 있으며, 고려 고분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밖의 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고려의 왕릉은 일반적으로 구산(邱山)의 언덕 아래쪽의 남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동쪽)에 청룡, 우(서쪽)에 백호를 이루는 언덕이 있고, 후방에 주산(主山)이 있고, 백호는 능의 앞쪽으로 우회하며, 주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은 능 우측의 개천에서 시작해서 능 앞을 흐르면서 능이 속한 혈판의 토질을 단단하게 해주므로 명당이 꽤 있다.

    고려 시대는 장례문화에서도 사찰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불교적인 의례와 유교적인 절차가 경우에 따라서 혼합이 되어 있다. 묏자리를 잡는 데는 음택 풍수가 성행했지만, 매장뿐 아니라 화장과 풍장(시체를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 등의 전통도 이어졌다. 조선 시대 장례문화는 초기와 중기에는 유교적인 장례문화가 정착되고, 불교의 장법인 화장이 금지되며, 후기에는 묘비의 사용이 크게 확산되면서 문중 단위의 집단 묘지가 성행했으며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키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명당자리를 놓고 다투는 산송(山訟·묘지를 쓴 일로 생기는 송사)이 빈발했다. 조선 시대 장례에서 고인이 마지막으로 입고 가던 옷, 즉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가운데에서 좋은 것을 골라 입혀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에는 매장뿐 아니라 화장을 할 때도 삼베수의를 입히고 붕대로 둘둘 말아서 마치 미라 같은 흉측한 형상으로 만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베수의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반포한 ‘의례준칙’에 포목을 수의로 하도록 규정했는데, 포는 삼베이고 목은 무명(면)을 의미하며 이후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의해 삼베수의를 사용하게 됐다. 이제 삼베수의와 쓸데없는 장례절차를 과감히 청산하고 평소에 고인이 즐겨 입던 옷이나 아끼던 옷을 입히고 가장 값싼 오동나무 관을 사용해 매장이나 화장을 하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해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4년도 전국 화장률이 79.2%로 최종 집계됐다. 전국 시·군·구 중 화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통영시로 무려 95.2%에 달했으며, 반면 전남 곡성군의 화장률은 34.0%로 가장 낮았다.

    매장과 자연장(잔디장, 수목장, 화초장, 정원장)을 살펴보면 매장의 경우, 땅속의 시신이 살과 피가 없어지고 뼈만 남게 되면 바람 속의 산소에 의해 뼈가 삭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파동이 발생하여 길지, 즉 ‘좋은 터’라면 좋은 파동이 후손에게 전달돼 복을 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풍수용어로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 한다. 그러나 흉한 터로 판명되면 화장을 하는 것이 좋다.

    공원묘원의 사설묘지(개인, 법인, 사찰 등이 운영하는 시설)는 땅의 성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많이 안치해 돈을 버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관리 소홀로 인한 현장은 차마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사설묘지에 비하면 공설묘지의 시설상태나 관리가 그나마 낫기는 하지만, 땅의 성정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여서 별반 기대할 것도 없다. 국내의 자연장 중에서는 잔디장을 가장 선호하는 편인데, 잔디장은 16㎝ 정도 폭의 구멍을 파서 골분(뼛가루)을 넣고 흙으로 메운 후에 잔디를 입히고 표지석을 구멍 위에 세우거나 앞에 세우는 장법이다. 그런데 깊이가 30㎝밖에 되지 않으므로 골분을 한지에 싸서 넣거나 골분만 넣고 그 위에 흙으로 메우는 것보다 마사토나 주변 흙을 체로 걸러 골분과 섞어서 넣으면 골분의 응결 또는 변색이 되거나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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