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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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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파른 삶의 길을 걸어간 시인들의 노래- 서일옥(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6-06-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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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삶에 지루해한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은 바쁘고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힘의 원천이 되며 또한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꿈을 꾸게 되고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심오하고 새로운 자기 나름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의 세계가 현실에서 일어날 경우에는 진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문학에서도 다른 장르의 예술과 다르지 않다. 좋은 반응을 얻는 시들은 가파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쓴 자기만의 가식 없는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김수영, 천상병, 김소월, 혹은 윤동주의 시를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김수영은 “예술가는 되도록 비참하게 나와야 한다. 되도록 굵고 억세고 날카롭고 모진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와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6·25 비극의 체험과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그의 시에 배어 있다. 천상병의 대표작 ‘귀천’은 이승에서 실업자에, 노숙자에, 환자에…. 온갖 신고 (辛苦)를 다 겪은 사람이 부르기에는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노래여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온 국민이 애송하는 김소월의 사랑시 역시 그가 체험한 비극적이고 순정한 사랑의 스토리가 우리말의 가락 속에 스미어 흐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장구한 시간 독자가 많은 시로 남아있는 것이다. 최근 동주라는 영화로 다시 한 번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 윤동주의 경우도 그렇다. 청년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름다운 그의 시들을 읽으며 생체실험이라는 극악무도한 일제의 만행에 의해 생명이 끝나고 말았다는 생각에 닿으면 쓰라린 가슴을 주체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순진무구한 그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 시조단에서는 어떤 분이 있을까? 많은 시조시인들이 있지만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노산 이은상 선생을 들고 싶다. 그는 1942년 12월 23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홍원경찰서와 함흥교도소에 구금됐다가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그렇지만 1945년 2월 2일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유세에 나가달라는 제의를 거절했다가 다시 사상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 유치장에 재구금되어 8월 유치장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선생이 옥중에서 쓴 시조는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ㄹ자’(홍원 옥중에서) ‘공습’(함흥 옥중에서) ‘해바라기’(광양 옥중에서) 등 15편을 넘고 있다. 그가 쓴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시조 한 편을 보자.



    평생을/ 배우고도/ 미처/ 다 못 배워/인제사/ 여기 와서/ㄹ(리을) 자를/ 배웁니다./ㄹ(리을)자/ 받침 든 세 글자 /자꾸 읽어/ 봅니다.//제‘말’/지키려다/제‘글’/지키려다/제‘얼’/붙안고 /차마 놓지 /못하다가/끌려 와 /ㄹ(리을)자 같이/ 꼬부리고 /앉았소.//

    - 이은상 ‘ㄹ자’(홍원 옥중에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를 대면서 악랄하고 잔혹한 고문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좁디 좁은 감옥에서 구부리고 앉아 견디면서 지은 이 작품은 우리들의 피를 토하게 한다. 이처럼 가파른 삶을 살면서 그 시대에 반응하는 노래를 남긴 사람들은 작품으로 독자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서일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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