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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 (23) 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 기사입력 : 2016-06-10 14: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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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치가 끝났다는 걸 안 건 서른 살 먹던 해였다.
    차려진 음식은 동이 났고, 흐르던 음악은 끝이 났지만,
    나는 나 자신과 내 주변, 그리고 이 세상과 화해해야할 뭔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폐허 같은 내 내면에는, 이대로 계속 나아가기엔 턱없이 빈약한 의지와 허술한 논리만이 건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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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주어 밀면 앞으로 팍 고꾸라질 것만 같은, 참으로 딱한 서른 살 여자.
    그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건 돈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계속 이 삶을 살아가야 할 당위성 같은 거였다.
    대체 이건 뭐지? 뭘 위해 계속 살아야 하는 거지?
    어떤 절대자가 있어 맵찬 손으로 내 뒷통수를 딱!하고 내리친 것만 같은 그 참담한 기분.
    그게 지난 2014년 8월 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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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한 심정은 긴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 짐을 쌌다.
    짐을 싸두고, 부모님께 잠깐 여기를 떠나있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너를 믿는다, 라고만 했다.
    다음날 차에 옷가지와 세면도구가 전부인 단촐한 짐을 싣고 지리산 자락의 한 사찰에 들어갔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도록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8시면 잠이 들었다.
    고기를 먹지 않았고 금강경을 읽으며 죽은 자들을 천도(薦度)하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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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때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1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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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찮게 네팔에 갈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끔찍한 지진을 겪고, 행정력이 마비된 무정부 상태에서도
    사회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신비한 나라.
    그곳엔 시바신(神), 칼리여신, 석가모니, 문수보살의 전설이 길가의 흔한 자갈처럼 널려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국내외 언론들이 대지진이 덮친 네팔을 두고 '신도 버린 나라'라 지칭했지만
    글쎄, 신은 그들을 버린 적도, 구한 적도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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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카트만두 시내의 모습.

    승합차에 몸을 싣고 혼잡한 카트만두 시내를 관통할 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비닐과 종이, 거적으로 얼기설기 기운 더러운 천막 안에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들 사이에 태어난 조막만한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있는 것을.
    소와 개가 흘린 배설물 위에 퍼질러 앉아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탁한 물을 마시고, 길에서 구걸해 온 식은 밥을 손으로 뭉쳐 입 속으로 욱여넣는 것을.
    겨우 배를 채우고 나면 다음 끼니를 위해 다시 구걸을 나가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는 것을.
    또한 나는 단박에 알았다.
    그들에게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질문은 성립이 불가능한 것임을.
    일행을 인솔한 운전기사가 서툰 영어로 말했다.
    당신은 내일 여기서 저들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집시나 유목민처럼 수시로 천막을 걷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든요.
     
    내가 서른 살에 끝났다고 느낀 잔치는
    어쩌면 최영미 시인이 말하는 잔치와는 많이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나 그녀의 동지들처럼
    선전물을 뿌려본 적도, 화염병을 던져 본 적도, 어떤 프로파간다에 경도되어 본적도 없으니.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때 민주화 운동에 열렬히 몸담았던 세대도
    아주잠깐 지리산에 은둔했던 나도
    서른 이후엔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테니.
    우리가 살아가야 할 당위성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걸.
    해가 지면 어둠이 내리듯, 자연스레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 뿐이라는 걸.
    한때 그들이 추앙했던 화려한 아젠다도 살아가는 문제를 풀기 위한 갖가지 공식 중 하나일 뿐.
    더러운 천막을 걷고 나와 구걸한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살더라도,
    그건 그저 하나의 방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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