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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황수로 동국대 종신석좌교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장
“채화는 혼을 담은 작품… 고통과 인내 없이 꽃은 피지 않아”

  • 기사입력 : 2016-06-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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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궁중 잔치 장식 위해
    비단·모시·밀랍 등으로 꽃 만들어
    왕실의 품위 나타낸 화려한 가화
     
    천 염색해 꽃 모양으로 재단 후
    인두로 잎맥·주름 만들고 밀랍처리
    수개월~1년 걸려 한 송이 제작
     
    궁중채화 맥 이으려 사재 털어
    박물관·전수관 건립도 진행 중
    개인 능력 한계로 국가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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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채화장 황수로 교수가 채화작업을 하고 있다.
    “벌과 나비가 날아와 앉지 않을까요? 채화는 장식품을 넘어 혼을 담은 실물같은 예술작품입니다.”

    거의 한평생을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등을 근거로 궁중채화(宮中綵花) 복원과 전수에 전력을 쏟고 있는 사람이 있다. 궁중채화장(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황수로 동국대 종신석좌교수이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채화연구소에 나와 제자들과 함께 보다 나은 한국전통예술인 채화 재현과 현대화를 위해 연구하고 작품을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황 채화장은 “끈기와 부지런함이 없으면 채화를 할 수 없다”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궁중채화를 만든 이의 내면까지 볼 수 있어야 그 가치를 비로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궁중채화 연구소 원장을 맡고 있으며 동국대 종신석좌교수, 경남도 문화재위원이기도 한 황 채화장은 사재를 털어 채화 전시와 전수에 필요한 한국 국중채화 박물관 수로재(水路齋)와 전수관 비해당(匪懈堂)을 양산시 매곡동에 건립하고 있다.

    그는 한국궁중채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고, 전수를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도 강의와 시연 등을 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궁중잔치에 등장하는 모조꽃= 궁중채화는 궁중의 잔치를 장식하기 위해 비단, 모시, 밀랍 등 갖가지 재료를 다듬고 염색해 만든 화려한 가화(假花)이다. 모란과 매화와 같은 꽃뿐만 아니라 벌, 나비, 새 등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꽃과 곤충, 동물을 정교하게 재현해 왕실의 품위를 드러낸 조선시대의 주요한 장식품이기도 하다. 채화에는 행사장에 쓰는 준화(樽花), 상차림에 쓰는 상화(床花), 머리에 꽂는 잠화(簪花) 등이 있다. 조선조 왕이 등장하는 잔치에는 적어도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채화가 연회장을 장식했다.

    황수로 채화장은 “조선은 유교사상에 따라 궁궐에서 잔치를 열 때 살아있는 꽃을 꺾지 않고 종이, 비단, 밀랍 등으로 꽃을 만들어 장식했다”며 “영원불멸한 조선왕조의 번영을 기리고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조상들의 철학적인 신념이 화려하고 숭고한 궁중채화문화를 번성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꽃(花)은 왕을, 벌과 나비, 새는 백성을 각각 상징하며 함께 어우러지게 장식했다 한다.

    ◆궁중채화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는= 꽃장식에 관심이 많았던 외조부(고종 때 궁내부 근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 어머니와 이모 등이 일하던 침방에서 남은 비단조각으로 꽃을 만들던 기억이 난다며 1960년 도쿄대 교수였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그에게 생활이던 꽃은 운명이 된 것 같다고.

    일본 여성들이 꽃꽂이를 자신들만의 전통문화라고 해 어릴적 기억을 떠올려 ‘아니다’고 했지만 그들은 수긍치 않았다. 여기서 황 채화장은 일본인들의 생각을 뒤집기 위해서는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가 국사로 전공을 바꿔 학위를 딴 것도 이 때문이다. 그저 놀이로 꽃을 만들던 자존심 강한 소녀가 공부하고 연구해 꽃장식을 만드는 화장이 됐다. 사비를 털어 한국궁중채화연구소를 열고 채화연구와 복원에 힘써 온 지 60년. 그간 재현된 채화는 수천 점에 이르고, 오랜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리한 채화제작기법 등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채화’라는 책도 지난 2013년에 발간했다. 이전에 한국의 꽃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꽃예술문화사’도 출간했다. 그는 채화 만드는 기법 강의와 시연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공간만 주어지면 사비를 털어 전시회도 수시로 갖는다. 이러한 것들이 궁중채화의 명맥을 잇고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송이 만드는 데 수개월에서 1년= 채화 한 송이를 피우는 데는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다.

    꽃의 본태를 파악한 후 우선 천(비단)을 홍화나 쪽 등 천연염료로 염색한 다음 꽃과 잎의 모양에 맞게 재단한다. 이어지는 인두질로 잎맥과 주름을 갖게 되면 밀랍처리한다. 밀랍은 성분이 꿀이기 때문에 나비와 벌이 날아들기도 하고 물에 닿아도 처지지 않으며 염색 또한 바래지 않는다. 이어 꽃 모양을 만들고 천연꽃술과 꽃가루를 넣고 마지막으로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으면 꽃이 활짝 피면서 아름다운 채화 한송이가 완성된다. 이처럼 채화는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일일이 자르고 묶고 두들겨 만들어진다.

    황 채화장의 진두지휘로 수많은 제작과정과 고증을 거치면서 연구에 매진해 온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덕수궁에서 ‘조선왕조 궁중채화전’을 개최했다. 2005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부산개최기념 특별전시회를 가져 각국 정상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황 채화장은 “궁중채화 만드는 공정이 까다롭고 어려운 만큼 제자와 전수자들이 상당한 고생을 하고 있다”며 “전수자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 공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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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채화 지당판


    ◆궁중채화 박물관과 전수관도 건립= 황 채화장은 궁중채화의 맥을 잇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사재를 털어 양산시 매곡동 840 일원 1000여㎡에 연면적 455㎡ 규모의 궁중채화박물관(수로재)과 매곡동 868 일원 2534㎡에 연면적 561㎡의 궁중채화전수관(비해당)을 짓기로 하고 우선 박물관을 건축하고 있다. 현재 공정률은 85%다.

    박물관에는 기본 전시실과 영상홍보실, 채화작업실 등이, 전수관에는 전수교육실, 염색실, 작품수장고 등이 각각 마련된다. 전수교육실에서는 궁중채화연구는 물론 예절교육, 자연염색학습, 궁중음식연구 등을 하게 된다.

    그는 사재를 털어 박물관 등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앞서 궁중채화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사장될까봐 두렵고 안타까워서이다”며 “채화의 가치를 찾아 낸 자신이 죽고 없더라도 박물관과 전수관이 있으면 그 명맥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개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국전통궁중문화 재현과 전승, 지방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작은 관심이 한국전통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디 쉬운 일이 있습니까만은 고통과 인내 없이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채화장의 길을 가고 있을 겁니다.”

    황수로 채화장은 꽃같은 미소를 지었다.

    글·사진= 김석호 기자 shkim1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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