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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버지의 6·25- 최병선(경남동부보훈지청 나라사랑전문강사)

  • 기사입력 : 2016-06-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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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신 아버지는 6·25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겪은 분이다. 아버지는 육군 중위로 중대장을 맡아 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그중 전남 백운산 공비 토벌 전투를 얘기할 때면 그렇게 흥분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동네 아저씨들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면 언제나 공비토벌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고, 나는 어른들 사이 구석 자리에 앉아 실감 나는 영화장면 같은 그 이야기의 마법 속으로 빠져들어가곤 했다. 드라마다운 것은 10살 차이 나는 어머니를 전쟁 와중에 그것도 백운산에서 공비토벌 중일 때 만난 이야기였다. 치열한 야간전투에서 다쳐 대나무 숲속 외진 민가로 숨어 들어간 아버지가 약 열흘간 피신을 하여 요양을 하고 무사히 본대로 귀대했으며 생명의 은인으로 인연이 돼 전쟁 중에 결혼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할 때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함에 치를 떨곤 했다. 당시 북한군 점령지 마을에서는 밤마다 횃불로 불을 밝히고 온 마을 사람들, 심지어 젖먹이까지도 전부 마을 공회당 같은 곳에 불러 모아놓고 사상교육과 인민재판을 새벽이 되기까지 실시했단다. 누군가 경찰이나 군인가족이란 게 밝혀지면 곧바로 인민재판을 열고 인정사정 없이 죽창처형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미소나 양반집, 있는 집으로 소문난 집들은 모두 철저히 약탈당했으며, 그집 주인들은 평소에 원한 품은 사람의 고자질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거였다.

    전쟁이 한창일 때 북한 정규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의해 돌연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일어나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요 인사들을 처형 내지는 끌고 갔으며,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청소년들을 짐꾼으로 강제 연행해 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공산주의를 피를 먹고 사는 집단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어린 북한 청소년들을 정규군으로 편성해 전쟁에 내보냄으로써 전쟁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는 것도 증언했다. 이 모두가 몸으로 6·25를 겪은 아버지가 공산주의의 광란이 어디까지 간 것인지, 이념에 몰입돼 휴머니즘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직접 말해 주었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참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전쟁의 위험과 그 가슴 아픈 참상을 모르고 안이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이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잃지 않으려면 언제나 그에 대한 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해야 한다.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그토록 절절히 갈파했듯이, 준비 없는 역사는 미래를 잃기 마련인 것이다. 해마다 6·25가 다가오면 격동과 혼란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다간 아버지를 회고하며 이 땅에서 이런 파괴와 슬픔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병선 (경남동부보훈지청 나라사랑전문강사)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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