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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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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길이라고 다 길은 아니다- 박한규(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기사입력 : 2016-06-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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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초 함양 금계에서 출발해 산청, 하동, 구례, 남원을 거쳐 다시 함양으로 지리산 둘레길 250㎞를 13일 동안 미련하게 걸었다.

    첫 날은 영하 5.7도로 기온이 떨어져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고, 걷는 동안 가장 기온이 높았던 날은 22도였다. 매일 평균 7시간, 20㎞를 걸었는데 종일 비를 맞은 적도 있고 진돗개 세 마리의 안내를 받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나니 해가 떠서 신발 끈을 매고 등에 약간의 무게만 얹어 놓으면 발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이정표가 들고 있는 두 개 화살표 중 시계방향 길을 안내하는 빨간 화살표만 보면 힘이 나서 잘 걷기 시작하는 우리는 영락없는 파블로프의 개였다. 이 정도 걷고 나니 걷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 만했다.

    인간은 길짐승이다. 그래서 잘 걷는다. 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도 없다. 걷는 동안 인간이 본시 길짐승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로 어느 날은 걷기를 마치고 숙소까지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일주일 만에 차를 타니 언젠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를 차멀미를 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일주일이나 차를 타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나 싶은데 일주일 새 몸은 시속 4~5㎞에 확실히 적응해서 시속 40~50㎞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지난 17일 정부는 해안과 비무장 접경지대를 연결하는 ‘코리아 둘레길’ 4500㎞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지에서는 넘쳐나는 한국 방문객 수에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대비 길이가 3배에 달하며 연간 550만명 방문에 7200억 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 열풍은 밖으로도 눈을 돌려 적지 않은 사람들을 산티아고 순례길로 안내하고 있으니 그런 비교를 한 모양이다. 창원에도 무학산 둘레길, 천주산 둘레길, 숲속나들이길, 진해드림로드, 저도 비치로드, 원전 벌바위 둘레길이 있다. 굳이 거리를 합산해 볼 생각은 없다. 경상남도 아니 전국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런저런 이름을 단 길들이 있으며 그 거리는 모두 얼마나 될까?

    지난 정부는 그렇게나 자전거에 집착했었다. 그 여파로 창원시는 2012년 5월 41억원을 들여 하루 평균 6만4800대가 통과해 100만 인구 창원시에서 가장 붐비는 구간 중 하나인 안민터널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양방향으로 따로 만들었다. 투명 보호벽까지 세워 가면서. 이 길을 만들 때 터널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터널 자전거도로로 이용 시에는 마스크, 보안경을 필히 착용하시고 이용하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표지판까지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이 길을 이용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고등어의 죄까지 묻는 미세먼지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지금은 얼마나 이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얼마나 이용할까? 1인 1회 이용가치를 1만원으로 가정하면 41만 명이 이용해야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10년 동안 매일 112명이 이용해야 한다. 유지 관리 비용은 별도다. 당시 명분은 ‘전 국토를 자전거 길로 연결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길짐승들이 살던 땅이니 걸을 수 있는 길을 연결하는 것은 자전거 길 보다는 쉬울 것이다. 다만 그 길은 단순히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 연결이 능사인 줄 알고 자칫 안민터널 자전거 길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마스크나 보안경을 착용하고’ 걸으라고 할까 두렵다. 22도만 돼도 마스크나 보안경을 착용하고 걷는 것은 아주 고통스럽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 길이의 3배, 550만명 운운하는 걸로 미루어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여 걱정이다. 공무원스러운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옳은 길을 찾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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