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성산칼럼] 위작과 대작에 관하여- 정진혜(서양화가)

  • 기사입력 : 2016-06-30 07:00:00
  •   
  • 메인이미지

    2016년 상반기 미술계는 위작, 대작 관련 사건이 이슈가 되고 있다.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미술계가 시끄러운데, 여기에 이우환 화백의 위작 시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 등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면서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사건 당사자 모두 연예계와 화단에서 네임 밸류가 막강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 결과가 미칠 파급 효과는 더욱 가늠하기가 힘들다.

    과거에 미술품 비자금 파문이 종종 불거져 나왔지만 이번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며 미술판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은 없었다. 전례에 없던 미술작품의 위작 논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 국내 유수의 갤러리들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한국미술사 세기의 스캔들로 들썩이고 있다.

    팝아티스트로 자처해온 조영남의 대작사건은 이우환 화백의 위작 시비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과는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이우환 화백과 천경자 화백은 평생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왔고, 반면 조영남은 화가보다는 연예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조영남은 대작논란 수사 중에 대작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발언 때문에 미술인들의 공분을 샀다.

    위작과 대작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위작에 대해서는 전문가, 비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사기라고 비판하지만 대작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사기성 여부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같은 위작 논란에 있어서도 이우환 작가와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위작임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들이 몇 가지 명확하게 나와 있는 반면, 천경자 화백 작품의 위작 여부 확인은 그렇지를 못하다. 이우환의 작품은 1970년 말에 그려진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면 되지만 천경자의 미인도는 작품에 표기된 1977년부터 위작 가능 시점인 1980년 초반까지 천경자 화백의 동시대 작품들과 비교해야 하고 위작과 진작이 같은 시기에 이뤄져서 판별하기가 곤란하다.

    이우환의 경우 모든 기관이 위작 결론을 냈고, 가짜를 만들고 유통시킨 당사자들의 진술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정작 본인은 진위 여부에 대한 진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음도 두 사건의 차이점이다. 이우환 화백이 위작에 대한 즉답을 피한 것이 세간의 이목이 된 만큼 판단을 신중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이 화백 역시 위작으로 판단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동시에 제기됨으로써 현재 이 화백의 작품 진위 논란은 혼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우환의 압수된 그림이 모두 위작으로 최종 결론나게 되면 위작에 대한 ‘기준’이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 이우환의 작품 진위 여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측도 한다. 이런 논란 속에 만약 이우환 화백이 일부 작품에 대해 진품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그간 진행된 전문감정가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와 정면으로 배치되게 되어 있다.

    조영남 대작논란을 “작품의 핵심은 콘셉트이며 작가가 몇 퍼센트를 개입해 작품을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번 사건은 현대미술의 논리를 전혀 모르는 일부 언론이 선동했고, 현대미술 논리에 무식한 대중이 흥분한 것”이라고 한 진중권 교수의 발언은 일반인들을 혼동스럽게 했다.

    아티스트 장고은씨는 “작품은 콘셉트 자체가 중요해서 자신이 직접 그리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붓질 자체가 중요해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이 반영돼야 하는 작품이 있다”고 말한 것에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굳이 대작을 관행이라 인정한다 해도 조영남 사건은 사기, 거짓말, 양심불량, 노동착취 등으로 엄격히 범죄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시간과 고민의 산물이라는 뜻으로 아름답게 작품을 하고 있는 전업작가들에게 이번 대작논란은 더없이 황망함을 전해준다.

    정진혜 (서양화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