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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허락할 것인가-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6-07-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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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이기도 한 강영민 작가가 최근 베를린에서 열린 흥미로운 전시회인 ‘48시간 노이쾰른’에 참가한 후일담을 들려줬다. 강 작가의 작품은 다소 도발적으로 북한의 인공기와 독일의 나치기를 나란히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작품해설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표상인 하켄크로이츠와 인공기는 자유주의-자본주의가 담보하지 못하는 평등에 대한 인류의 유토피아 충동을 나타낸다”면서 “두 체제가 전 세계적인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위기를 틈타 다시 부상하게 되는 상황을 경고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물론 두 깃발은 ‘모자이크 처리’했으며, 이 모자이크 처리는 일종의 ‘금지된 표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친절한(?) 설명이 있었지만, 독일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걸려 있는 하켄크로이츠기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나치기를 버젓이 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항의하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더 흥미로운 일은 이 작품이 SNS상에서 전시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전시를 지원한 한국의 모 지방자치단체에서 강 작가의 작품에 인공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작품의 의도였기도 하니, 이런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는 전시의 성공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시의 성공 여부와 별도로 생각해볼 문제가 여기에 감춰져 있다. 바로 ‘검열’의 자의성이다. 우리는 국가의 안보와 개인의 안전을 위해 어떤 것을 금지시키고 어떤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강 작가의 전시가 정확히 폭로하듯,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허락할 것인지 정하는 문제는 제각각 다르다. 무엇이 이것을 결정하는가. 어떤 것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인준해주는 규범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규범은 도덕 감정이고 합리성에 의존한다.

    법이 규범을 재생산하는 것이지만, 최초의 법은 폭력에 근거한다. 무엇보다도 규범은 폭력적으로 주어진다. 최초의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은 불가피하다. 규범이 곧 감시의 체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래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감시는 조지 오웰이 음울하게 상상했던 ‘빅브라더’의 시선이라기보다, 우리 각자가 권력의 기능에 순치하면서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협력체계이다. CCTV로부터 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자체가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원리이다. 따라서 이런 전방위적인 감시의 내면화가 곧 규범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구조인 셈이다.

    강 작가의 전시에서 빚어진 해프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처럼 법의 집행에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는 국가에서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는 여전히 뚜렷한 기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더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주장을 처음부터 배제하려 들지 말고 차분히 듣고 파악하려는 개방적 태도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쉽게 현실의 이해관계를 넘어 관철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논란 역시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한국의 ‘후진성’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강영민 작가의 전시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금지하는 것은 있다. 무엇을 금지하는 문제는 가치의 문제이다. 어떤 가치를 좋고 나쁘다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미처 결정하기도 전에 지구 사회는 지금 가치 혼란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지만, 그래서 더욱 기존의 가치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요구를 외면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 안고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할 경우, 우리는 또 다른 독재를 용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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