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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천재들의 무용담과 보편가의 시대- 박형주(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6-07-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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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는 한 우물을 파서 특정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 노벨과학상처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상도 전문가들의 성취에 주는 상이다.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항상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은 아니라서, 이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기고 그들의 지적 생산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통상 좋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여겨진다.

    만능가 또는 보편가는 분야의 경계에 제한받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자와 수학자와 과학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으니 보편가들의 세상이었다.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은 이런 보편성의 재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아르키메데스는 그 박학다식함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인데, 고상한 지식도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정약용과 비교할 만하다.

    중세 유럽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상당히 지속돼 다빈치나 파스칼처럼 미술가이자 수학자이고 과학자인 사람들이 출몰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이런 분야들이 자연스레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인체를 잘 그리려고 하다 보니 해부학의 전문가가 됐고, 파스칼은 풍경을 잘 그리려고 하다 보니 원근법의 원리를 사영기하학으로 발전시켰다.

    세상에 예외는 항상 있다. 20세기 마지막 보편가라고 불리는 폰 노이먼은 전설적인 수학자로서 대수학과 해석학의 대가였다. 그의 연산자 이론은 양자역학의 주요 도구가 되어 물리학자들의 언어가 되었다. 게임이론을 발전시켜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컴퓨터 개발의 선구자였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 멤버였으며, 수소폭탄 개발의 주역이었다. 각각의 성취만으로도 해당 분야 최고의 성취로 길이길이 남을 만한 수준이다.

    지구에서 IQ(지능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 명단에 거론되곤 하는 테렌스 타오는 조화해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인데 정수론에 무작위성을 도입해 필즈상을 받았다. 클레이 재단이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해답을 찾던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론을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난해한 개념을 사용해서 풀어냈는데,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닌 타오는 이에 대해 통찰력 가득한 강의를 펼쳐낸다. 그의 천문학 대중 강연은 지금도 명강으로 회자된다.

    수학자들 사이에서 ‘수학 연구를 하다가 난관에 봉착해서 진전이 없으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이라는 농담이 오간다. 답은, ‘테렌스 타오가 그 문제에 관심 같도록 설득하면 된다’이다. 타오가 그 문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면 그건 풀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농담은 1978년 필즈상을 수상했던 프리스턴 대학의 찰스 페퍼만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의 타오를 ‘Mr. Fix-it(해결사)’이라고 평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특정인에 대한 이런 무한신뢰라니. 26세에 UCLA의 정교수가 된 이 사람은 이제 고작 41세이다.

    이런 천재들의 무용담은 강 건너 얘기 같아서 우리 같은 범인과 연결점이 없어 보인다고? 기존 직업들이 없어지고 새 직업이 출현하는 일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한 분야의 전문가로 맞춤형 교육을 받았다가 그 직업이 없어지면 낭패가 된다. 그래서 맞춤형 교육은 위험하고, 필요할 때 새로운 분야에 진입이 가능한 정도의 소양은 이제 필수가 됐다. 지식의 총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보편가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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