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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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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준법과 다양성 포용-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6-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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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퇴근길, 도시의 거리는 거대한 주차장이다. 주차된 차를 헤집고 빈자리를 찾다 보면 우울해진다. 곡각지(曲角地)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를 겨우 피해가며 내 차가 하룻밤 유(留)할 곳을 찾는다. 일본은 자동차를 사려면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에 그런 말이 잠깐 나왔던 것 같다. 이미 불가능하다.

    나는 창원의 자랑인 시청 앞 로터리를 사랑하지만, 운전을 할 때에는 그곳을 피한다. 로터리로 진입하는 초록 신호가 떨어지면 조심조심 차선을 바꾸어 진행하는 차 옆으로 자기 갈 길만 가는 차가 경주마처럼 뛰어든다. 무수한 접촉사고를 목격했다. 다행히 속도를 많이 높일 수는 없는 곳이라서 큰 사고는 보지 못했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을 때, 보행자가 없으면 우회전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저 멀리서 걸음이 불편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오는 것이 보인다. 재빨리 우회전을 할 수도 있으나 애매해서 잠깐 기다리기로 한다. 여지없이 뒤차는 경적을 울린다.

    금요일 저녁 상남동에서 술자리가 있다. 집에 들러서 차를 두고 택시를 불러 시내로 나간다. 기사는 지름길을 잘 알아 요리조리 곡예사처럼 차선을 변경하며 신속히 목적지까지 향한다. 좌회전 차선에 대기하는 차가 많이 밀려 있다. 기사는 좌회전 신호가 바뀌는 타이밍을 기막히게 맞추어 직진 차선에서 크고 과감하게 좌회전을 한다. 구름같이 밀려 있는 차들을 제치고 신호대기 없이 교차로를 통과한다. 빨리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싶은 나는 택시기사를 속으로 응원한다. 정말 운전을 잘한다 싶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 잡는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나 질서 수준은 그에 못 미친다. 짧은 시간에 눈부신 물적 발전을 이룩했으되, 사회의 문화적 성숙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거리에서 운전을 할 때 특히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자동차라는 껍데기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 함부로 행동할까 싶다. 빨리 가지 못하면 인생에서 낙오라도 하는 듯 사람들은 쉽게 분노와 적개심에 빠진다.

    “양보를 하면 양보를 받고, 양보를 하지 않으면 양보를 받지 못한다”는 인생에서의 진리도 운전을 해보면 느낀다. 좁은 길 저 멀리서 마주오는 차를 위해 멈추어서면, 그 차도 멈추어 서서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반대로, 밀리는 요금소 앞에서 한 발이라도 먼저 가려고 억지로 차를 밀어 넣으면 옆 차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거창할 것이 없다. 질서를 바로잡는 첫걸음은 바로 양보이다.

    사회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서로의 능력은 다르다. 겁이 많은 사람도 있고 대담한 사람도 있으며, 재빠르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동작이 느린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답답한 운전을 하는 여성을 ‘김여사’라고 부르며 조롱한다. ‘김여사’는 서투른 운전으로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고, 더 나아가 다른 운전자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혐의도 받는다.

    그러나 도로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김여사’도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오히려 성질 급한 ‘김사장’ 탓이 아닐까?

    준법과 다양성 포용은 성숙한 사회의 기본이다. 효율을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능력이 모자라는 타인을 쉽게 무시하던 습관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안전하고 안정된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려면 신호와 제한속도를 지켜야 하고, ‘김여사’도 배려해야 한다.

    빨간불에도 슬금슬금 앞으로 나가는 옆사람에게, 초록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경적을 울리는 뒷사람에게 ‘한걸음 천천히 간다고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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