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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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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당신의 속삭임, 속삭임을 위하여- 명형대(경남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16-07-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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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물을 아는 가장 지배적인 감각기관이 우리 몸의 눈이다. 눈으로 보아야 우리는 비로소 옳다거나 그르다고 믿는다. 귀로 백 번 듣는 것이 눈으로 한 번 봄만 같지 아니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는 것이 사물을 가장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눈이 먼 헬렌 켈러는 다른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더 깊이 느끼고 또 그것을 다른 어떤 눈뜬 사람보다 사랑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곧잘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고, 향기를 느끼고, 맛을 보아 그것들에 더 깊이 빠져들며 시각이 줄 수 없는 가치를 교감하게 되는 경험을 해본다.

    우리는 청각, 소리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대가 바뀌고 우리의 욕망은 시각적인 요구에 그치지 않고 청각, 즉 소리에 대한 여러 욕망을 요구하게 된다. 보는 것만 아니라 귀로 듣는 삶의 일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문화생활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물과 더 깊이 교감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의, 소리에 대한 요구는 반대로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소음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살인까지 부른 아파트의 층간소음이 그런 것의 하나다. 방음벽을 만들고, 향리로 떠나는 것에는 소음을 피해 고즈늑한 소리에 대한 우리의 욕망임이 분명하다.

    귀머거리인 베토벤이 만들어내는 곡이 있다면, 시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거친 소음도 있다. 식당으로 가보자. 특히 식당에는 정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소음이 다반사로 있다. 고통스러운 많은 것들을 기꺼이 가까이하지 않으면 그것이 일으키는 화를 면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으로 이용하게 되어 있는 공공의 음식점의 출입은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삶이 팍팍해서일까. 직업군이나 환경에 따른 청력 장애로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하기야 정취로만 느꼈던 매미의 울음도, 무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도 환경의 변화로 인해 그 울음이 예전만 같지 않다. 옛날보다 더 큰 소음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확성기로 나팔을 불어대야만 하기 때문일까.

    옆자리에 앉은 두어 사람의 말소리가 식탁을 하나 건너고, 또 건너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울려 퍼진다. 심지어는 칸막이 너머에 누군가 모를 사람이 도망간 아낙 이야기며, 지방의원들의 횡령과 혈서사건이며, 해외여행에서 보았던 풍경을 큰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여기에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상스런 감탄사가 끼어들면 소리지옥이 따로 없다. 등산을 즐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식당을 들어선다. 공공의 장소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후안무치다.

    우리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한 식당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삶터가 왜 이처럼 시끄럽고 거칠고 무서운 소리들로 채워져야만 하는가. 본데없이 어릴 때부터 막살아온 가정의 풍경이 그러해서일까. 경제수준이 나아지면 그에 따른 문화 수준도 저절로 나아져야 한다. 노래라도 부르며 큰 소리로 즐길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공간으로 자리를 잡고 또 주인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면 이들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걷기가 단순한 육체적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들길의 바람이며, 풀꽃이며, 그것이 풍겨주는 아름다운 향기를 즐기게 하는 행복이듯이, 시끄러움 없는 아늑한 고요함이야말로 정말 우리들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자리의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소리 공간의 크기는 제한될 수 없는가. 엄마가 아이에게 소곤거리며, 젊은 남녀가 한 옥타브 낮은 소리로 사랑을 주고받듯이 우리들 모두의 말소리가 진정한 소통을 위해 낮은 소리로, 좀 더 낮은 목소리로 우리들을 감싸게 할 수는 없을까.

    명형대 (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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