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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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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으르렁말’의 사회-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07-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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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학자 고종석씨의 글을 통해 ‘으르렁말(snarl words)’과 ‘가르랑말(purr words)’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은 전형적인 으르렁말이고 “당신은 세상에 제일가는 여자야”는 전형적인 가르랑말이라고 예로 들면서, 생생한 동물의 의성어를 사용해서 이런 분류를 한 사람이 일본계 미국인 언어학자 새뮤얼 하야카와라고 소개했다.

    즉 으르렁말은 남을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으르렁거림으로 그 극단적 형태는 욕설이나 저주이고, 가르랑말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남의 호감을 사려는 언어행위로 그 극단적 형태가 연인 사이의 밀어거나 독재자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 수식사들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으르렁말과 가르랑말 같은 감정적 언어들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대화’보다는 자족적이며 과시적인 ‘표현’에 더 기여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교란시키는 행위라고 못박는다. 또한 그는 공적 담론의 마당에서까지 오늘날의 한국어가 으르렁말과 가르랑말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한국인의 심성이 열정적이라고 진단하지만 자칫하면 그 열정이 파괴와 자기파괴를 부추기는 영혼의 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가르랑말보다 으르렁말이 부쩍 늘어나 세상이 온통 시끌시끌하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정신 나간 발언이 그렇고, 단식 농성하는 도의원에게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해서…”라고 거침없이 내뱉은 경남도지사의 놀림말투의 막말 역시 전형적인 으르렁말의 표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김해시의원들마저도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람이 아닌 사람은 조용히 하라”, “우리는 짐승의 말을 듣고 있다”는 극단적인 으르렁말로써 아름다워야 할 ‘말들의 풍경’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렇게 드센 으르렁말들은 정치적 경쟁자들에게 대해서는 사납게 시비 거는 말이자 싸우는 말이 되어서 말의 폭발적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노회찬 국회의원이 새누리당을 향해 “막말을 서슴지 않는 홍 지사를 빨리 ‘수거’해 가라”고 또 다른 으르렁말로 응대하는 식이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는 공직자들의 말본새 치고는 비속한 데다 저열하기 짝이 없고, 발화자의 호승심(好勝心)만 채우려는 모욕적 언어로만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쯤 되면 대화나 설득은 기대하기 힘들고 여지없이 막장 드라마 같은 말의 이전투구(泥田鬪狗)판만 키우면서 서로의 악감정을 부채질하면서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말을 신중하게 하지 않아 낭패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말 때문에 여러 차례 파란을 겪었던 이가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막말로 으르렁댄다면 이는 ‘곤이불학(困而不學)’의 본보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인물들은 세상 민심은 아랑곳 않고 자기만의 아집과 어리석음에 갇혀서 만용만으로 살아가는 고집불통의 부류이기 십상이다. ‘곤이불학’이란 <논어> ‘계씨’에 나오는 말로 어려움이나 곤란함을 겪은 뒤에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못난 사람을 일컫는다. 이때 배움의 내용은 지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할 인륜을 가리킨다. 지금 이 땅에 상식적 인륜마저 깨닫지 못하는 불아귀 같은 위정자들이 사회를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 거나?

    세상이 올바로 되려면 말이 바르게 퍼져야 한다. ‘말’이 곧 ‘사람됨’이고, 사람다운 말의 사용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싸움꾼의 말인 으르렁말도, 빈말뿐인 가르랑말도 멀리하고서 순하고 바른말만 우리 사회에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위정자들이라면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는 ‘공자님 말씀’ 한 구절만이라도 꼭 기억해 두시라!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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