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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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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2 우리 동네 청춘] 문화기획자 배민 씨

재미없던 삶 노는 판 바꾸니 재미있네요

  • 기사입력 : 2016-07-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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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0월과 2015년 7월,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과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에서 각각 자그마한 음악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창원인디뮤직페스타. 창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디밴드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잔치였고, 관객과의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컴필레이션 앨범도 제작했다.

    기자가 처음 그를 알게 된 것도 이 행사를 통해서다. 인디밴드 멤버로 참여했지만 그뿐 아니라 그들 행사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는 남자.

    스스로를 문화기획자라고 말하는 배민씨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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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민 문화기획자가 풀뿌리문화공동체 ‘예종’에서 기획한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씨는 사진기자에게 어색한 느낌을 좋아한다며 스스로 포즈를 취했다.

    사는 게 재미없어서

    배민(35)씨는 학창시절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원대학교에서 언론정보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상경해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뜻 맞는 친구들을 만났고 겁 없이 20대를 위한 잡지도 발간했다.“‘ON 20’라는 잡지였습니다. 20대 청년들의 문화를 담았죠.” 하지만 실제는 이상과 엇박자로 나가는 법. 8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그리고 다시 창원으로 내려왔다. “제조공장도 다녀봤고, 제과제빵도 해봤고,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도 일해봤어요. 하지만 역시나 견딜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엇을 견딜 수 없더냐고 물었더니, 재미없는 걸 견딜 수 없더라고 했다. 잡지를 발간했던 것도, 여러 직종을 전전했던 것도 ‘재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재미가 없다는 건, 권태나 무기력 같은 거냐?’라고 물으니,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란다. ‘근본적으로 일상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수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없는 살림에

    그러던 그에게 조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백수로 지내며 밴드를 결성했다. 전국적으로 버스킹 붐이 막 일어나고 있던 2011년이었다. 밴드 이름은 ‘없는 살림에’. 이름 참 독특하다고 웃었더니, ‘진짜 없는 살림에 밴드를 꾸렸기 때문이다’이라는 진지한 답이 돌아온다. 멤버는 이승철(30·기타 작곡), 김현모(23·퍼커션), 배민(35·보컬 작사). 지금은 지역 인디밴드들 사이에서 ‘조상밴드’라 불린다. 그만큼 장수한 밴드라는 뜻. 지역에서 인디밴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업이 아니다 보니 멤버들의 진로에 따라 해체되기 십상이죠.” 밴드활동을 하며 경남청년희망센터 상근직으로 일했다. 때문에 자연히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그의 관심사는 밴드가 만든 자작곡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없는 살림에’의 곡에는 청년들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노래한 곡이 많다. “‘지금은 아이 워너비 정규직’이라는 곡을 작업 중이에요. 제목 그대로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죠.”



    예종의 탄생

    “예종이요? 재밌기 위해 벌인 일의 판이 커진 거죠.” 배씨는 현재 ‘예종’이라는 예비사회적기업 대표로 있다. 밴드활동을 하면서 ‘기존 문화에서 벗어나 지역의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놀이판’을 만들고 확장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다. 이러한 활동을 더욱 전문적으로, 또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꾸린 기업이다. 2012년 설립됐고 2013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2015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창원여성회 소속 풍물·난타팀 ‘해든누리’와 인디밴드 ‘없는 살림에’가 함께 꾸렸고 현재 문화예술 관련 교육, 강습, 기획, 음향 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직원은 모두 5명. 기획팀장으로 일을 시작한 배씨는 지난해부터 예종의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창원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꿈다락 문화학교, 경상남도와 창원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예종은 ‘미리 알리는 종소리’라는 뜻이 있어요. 우리도 그러한 하나의 소리가 되고 싶은 겁니다. 지역 청년들의 문화 향유, 예술 활동 활성화를 미리 알리는 역할을 하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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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사용설명서

    이러한 포부가 녹아든 대표적인 행사가 ‘청춘사용설명서’다. 이 행사의 전신은 ‘청춘락서’로, 창원 상남분수광장을 중심으로 전시와 체험, 버스킹, 프리마켓 등이 결합된 거리문화 축제다. 배씨가 경남청년회 청년문화기획단 단장으로 있으면서 꾸렸다.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무료 혹은 할인 관람이 가능하고 지역작가들의 작품전시와 지역 밴드들의 공연, 여러 가지 기발한 게임 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당시는 경남청년회 회비를 털어서 순수하게 사비로 진행했었어요.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광역시도별로 선정해 진행하는 지역거점특화 프로그램으로 지정돼서 지원을 받아 꾸려나가요.” 올해는 7월 현재까지 모두 3번을 진행했고 8월, 9월, 10월 매달 마지막 수요일 오후 창원상남분수광장 일대에서 축제를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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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민(왼쪽) 문화기획자가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미남빌딩 지하 풀뿌리문화공동체 ‘예종’에서 문화 콘텐츠 개발 회의를 하고 있다.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

    생각했던 만큼 계획들이 실제로 잘 구현되고 있느냐 물었더니 ‘좌충우돌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라는 것이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펼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더라고요. 대표를 맡고부터는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라는 조직이 가지는 특수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봐야 맞겠죠. 순수하게 청년들의 예술활동을 돕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러니까 정서적으로는 만족하지만 금전적으로는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일단 지금은 큰 수익 없이 유지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요.”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문화기획자로 살면서, 또 ‘조상밴드’를 꾸려나가면서 ‘노는 판’이 달라진다는 것이 느껴지냐고 물었다. “판이 바뀌는 모습이 분명 있어요. 제가 열심히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여러 사람들의 시도와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죠. 버스킹이나 프리마켓이 사실 생소했었잖아요. 그런데 그것들이 어느새 거리문화의 일종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어요.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나아졌다는 건 아닙니다. 전혀 없던 것이 조금 생겼다는 정도죠.” 그는 그 점진적인 변화를 달가워하면서도 근본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창원은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높은 도시죠. 분명 인프라가 적은 것도 아닌데 청년문화는 왜 없는가, 청년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는 적은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었죠.” 이 고민에 대한 결론은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최근 창원시가 문화예술특별시를 선포한 예를 들었다. “문화예술특별시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적인 미술관 건립, 마리나 시티 조성 같은 상당한 규모의 가시적인 단위로 이뤄져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니까 지역예술과는 상관없는 딴소리가 나오게 되죠.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번듯하게 차려진 무엇인 것처럼, 고급스러운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누구나, 아무데서나 참여하고 즐거워야 하지 않나요? 그러한 새로운 접근을 지역 청년들이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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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민 문화기획자와 풀뿌리문화공동체 ‘예종’ 회원들이 타 지역의 문화 기획 영상을 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


    동지들을 만나게 된다

    고달프다면 고달픈, 용감하다면 용감한 지역의 문화기획자로 살면서 비슷한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는 “진부한 말이겠지만…”이라며 입을 열었다. “고민 너무 오래하지 마세요. 그냥 해야 돼요. 아마 꽤나 많은 청춘들이 이런 조언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좀 강하게 말할까요? 계속 고민만 하면서 그렇게 살든지 한 발 내디뎌 보든지. 알아서 판단하세요.” 그렇다고 그가 아픈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청춘들 많이 힘들어해요. 휘청거리고, 걱정도 많고. 그런데 분명한 한 가지가 있죠.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마음 맞는 동지들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같은 생각, 같은 고민, 같은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순차적으로 뜨겁게 조우하게 돼요. 그들이 힘이 되어 주죠. 그렇게 그렇게 또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 같아요.”

    글= 김유경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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