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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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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노동운동 거인’의 인생 역정

불세출의 노동운동가, 소담 노현섭
홍중조·이상용 지음
사단법인 소담 노현섭선생기념사업회 펴냄

  • 기사입력 : 2016-07-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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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출신인 소담(昭潭) 노현섭 (1921~1991) 선생은 한국 근대 노동운동의 거인으로 불린다. ‘살아서도 노동운동, 죽어서도 노동운동’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전해질 정도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서 태어난 소담은 일본 중앙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마산부청(마산시청)에 잠시 근무했다.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고베 4168부대로 강제징집됐던 그는 6개월여 뒤에 신병 때문에 귀국해 지금의 마산용마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6·25전쟁 중 부산부두노동조합에 들어가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1952년 부산부두노동조합 마산지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운동 조직인 마산부두노동조합을 창설하고 이듬해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마산지역 부두노동자들이 진폐증이나 결핵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마산노동병원을 설립했고,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서는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소담은 친형인 노상도가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돼 행방불명 되자, ‘보도연맹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를 결성해 이승만 정권에 맞섰으며, 1960년 민의원 선거에 혁신계 대표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61년 포고령 위반으로 군 방첩대에 체포된 후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건강 때문에 일시 석방되기도 했지만 1972년 4월 가석방될 때까지 11년간 수감 및 가택연금을 당했다. 출소한 그는 극도로 쇠약해진 건강과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말년에는 서적 외판원, 보험 외판원 등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 1991년 10월 10일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사후 20년이 지난 2011년, 대법원은 그를 옭아맸던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소담 평전인 ‘불세출의 노동운동가, 소담 노현섭’에는 이 같은 소담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특히 그가 온 몸을 바쳤던 지역 노동운동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공동저자인 홍중조·이상용씨는 ‘저자의 글’에서 소담을 ‘박애주의 사상을 가진 선각자’라고 했다.

    서영훈 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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