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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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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여름 편지- 최미선(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6-07-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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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편지를 쓴다. 지하생활 7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7일 동안 밤낮없이 맹렬한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매미소리는 더 뜨겁게 들린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으로 폭염과 맞서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이들의 안부가 걱정된다.

    아프리카 세네갈로 인턴십을 떠난 H, 더위가 수사자처럼 갈기를 휘날리며 덤비던 날, 대한 청년의 의지를 스스로 시험해보겠다는 듯이 너는 표연히 검은 대륙으로 떠났다. ‘비정규직’이니 ‘고용불안’이니 따위의 말은 아예 거론조차 않고 오직 자신을 테스트해보겠다는 듯이 묵묵히 떠나버렸다. 그리고 G는 대학의 마지막 학기 수업을 마치고, 연기를 위해 끝내 상경했다. 상경하기까지 G는 누구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고, 끊임없이 생각의 방황을 했다. 주변의 이해를 얻어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연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자기와의 다짐이 흔들릴까봐 때로는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G가 연기 당위성을 거듭거듭 말한 것은 오히려 불안함의 방증이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대체로 알거니와 연기세계라는 것이 겉으로 화려하지만, 얼마나 불안정한 일인가. 그럼에도 무엇 때문인지, 꼭 그 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열망의 불꽃에 휘말린 것은 어쩌면 운명의 힘이라고 해야 설명이 될까.

    R은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으로 갔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막노동으로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몸을 기계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배추밭의 노동 강도에 너는 진절머리를 냈으면서 다시 그 노동 현장으로 간 것이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고맙다는 듯이. C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했고, P는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호주로 갔다. ‘열정 페이’, ‘최저시급’ 등의 그림자가 이들의 등 뒤에 배경으로 드리워져서 암전과 같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얼마 전, 거리에서 만난 고3의 D, 지금 수능 막바지 공부로 지쳤을 너는 그래도 박꽃처럼 희게 웃었다. 막바지 준비로 밤낮이 없을 텐데도 너는 마치 ‘장마철 물외처럼’ 성큼 자란 키 때문에 웃는 모습이 더 선량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 시기만 보내면 이제 곧 너의 세상이 올 거야”라는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너에게 차마 할 수는 없었다. 미구에 펼쳐질 시간들이 고3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을, 생각이 깊은 너는 이미 조금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S는 국토를 밟아 보겠다며 1인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유치원부터 외국에서만 학업을 마친 너는 올여름 국토를 찾아다녀보겠다고 했다.

    모두 ‘아름다운 방황’을 시작한 이들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아무도 대신해서는 안 되는 인생의 채무인 것이다. 아무것도 예정된 것이 없어서 너무 불안할 것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일이다. 그대들이 보여준 반복되는 다짐과 거듭되는 자신감은 오히려 ‘불안하다’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누구에게도 예정된 것이 없다는 게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표인 것이다. 이 ‘비확정성’ 때문에 모두는 자주 현실에 묶이기도 하고, 또 현실에서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항용, 인생의 젊은 시기로 비유되는 여름은 이 비확정의 유예 때문에 더 뜨겁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엔가 놀란 듯 매미가 갑자기 울어댄다. 가을이 올 즈음, 릴케의 목소리를 빌려서 성실한 사과밭 주인처럼 ‘주님, 사흘만 더 남국의 햇볕을 비추어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뜨거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방황’을 시도한 모든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최 미 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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