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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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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 유품 양산박물관에 전시

양산 출신 임시정부 재무차장
손자가 유품 100여 점 시에 기증
친필편지 등 광복절에 공개 예정

  • 기사입력 : 2016-07-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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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시는 최근 윤현진 선생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 추진을 위한 학술용역을 실시한 가운데, 선생의 유품이 기증돼 양산시립박물관에 보관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산시는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차장을 지낸 우산 윤현진 선생(사진·1892~1921)의 유품과 유물을 후손인 윤석우씨로부터 지난 22일 기증받아 양산시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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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진 선생이 어머니에게 쓴 친필편지./양산시/

    이번에 기증된 유품과 유물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들로, 임정에서 고국의 어머니께 보낸 친필편지와 선생의 손때 묻은 뿔도장, 일본유학 시절의 희귀 사진들, 독립운동을 함께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편지, 구한말 최고의 선승으로 알려진 경봉 정석의 추모글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추념사 등 100여 점에 달한다.

    기증자인 윤석우씨는 윤현진 선생의 손자로 양산시에서 추진하는 윤현진 선생 선양사업을 위해 70여 년 넘게 소장하고 있던 선생 관련 유품과 유물을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양산 상북 출생으로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7세 때 고향인 양산 만성재서숙(晩惺齋書塾)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15세인 1907년 숙부 윤상은이 설립한 구포의 사립 구명학교(龜明學校)를 1회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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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909년 중국의 난징, 베이징, 상하이 등지를 순회하면서 국제 정세를 익혔고 1912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법과에 입학한 뒤 신익희, 김성수, 장덕수, 송진우 등과 함께 ‘조선 유학생 학우회’와 ‘조국광복동맹결사단’을 조직해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14년 고향으로 돌아와 안희제의 백산상회에 입회해 투자하고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는 한편, 양산 지역에 의춘학원(宜春學院)을 설립해 후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양산에서 만세 시위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 이시영, 이동녕, 김구, 노백린, 여운형, 신익희 등과 함께 임정을 조직, 초대 재무차장에 선임됐다. 특히 당시 사재 30만원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아 실질적 정부수립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뒤 임시정부 재무위원장과 내무위원을 역임하다 1921년 9월 17일 29세에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유해는 상하이 정안사 외인묘지(지금의 만국공묘)에 안장됐다가 1995년 6월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고,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양산시는 이번 유품 및 유물 기증을 계기로 선생의 선양사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양산시립박물관은 광복절을 맞아 일부 유품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김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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