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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공직자들의 막말파문과 정치문화- 김동규(고려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16-07-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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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 들어 우리의 정치계나 관료사회에서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에 걸맞지 않는 언사로 대다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과 분노까지 느끼게 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를 이끌고 시민들의 모범이 돼야 할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시정잡배들이나 폭력배들과 같은 거친 말씨나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사람의 품격을 평가하는 것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사람의 평소 몸가짐과 말씨 그리고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했다. 물론 요즈음은 누구나 컴퓨터에 의한 타자의 글씨이기에 육필(肉筆)과는 달리 개개인의 개성을 알기가 어려우나 말씨 하나만 보고도 인격의 유무를 쉽게 가름할 수 있다.

    말(언어)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의 표현이고 사고방식은 곧 행동(몸가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거친 언어는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말의 중요성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는 많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와 같이 말 한마디의 위력이 있는가 하면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성경: 잠언)와 같은 경고문도 있다.

    이러한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에 중앙부처의 고위공직자가 몇 마디의 실언으로 평생을 망친 파면처분까지 당한 것이라든지 지난 총선의 공천과정에서도 막말파문의 실수로 입후보자에서 배제된 것들 그리고 누구보다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할 법조인들까지도 막말로 인해 해직된 사건도 많았던 것들이다.

    우리의 몸에는 눈이나 귀는 각각 2개씩이지만 입은 하나인 것은 보고 듣는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말을 유창하고 화려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진실성이 없음을 자주 보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이다. 그들의 유창한 언변은 모두 애국자이고 말로는 항상 국민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교언영색 (巧言令色)이다.

    공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로 개개인의 올바른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는 수신은 고사하고 제가도 못한 주제에 치국부터 하려고 하다 보니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인류사에서 위대한 정치지도자나 훌륭한 인물들은 남다른 수신과 제가의 수행과정을 철저히 거친 다음에 치국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적어도 선진국의 정계에서는 정책대결로 서로 다투더라도 비속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뽑힌 대통령을 보고도 비천한 언어로 희화화하는 천박한 사람들도 허다하다. 이것은 집안의 자식들이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욕하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가정을 확대하면 곧 국가인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면 가정이 파탄에 이르듯이, 대통령의 권위를 무시하면 국가도 쇠망하게 된다. 악랄한 독재자가 아닌 이상 대다수의 국민들이 선출한 최고통치자에 대한 권위는 인정해 주는 것이 성숙된 민주시민의 태도이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분명하게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사회의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는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적 사고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많다. 권위자(Authority)란 어떤 학문이나 기술에 있어서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른 대가(大家)로 존경의 대상이지만 권위주의자(Authoritarian)란 대중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의 권력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사회적인 지위를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로 잘못 인식하는 데서 이른바 갑질이라는 과오가 생겨나게 된다. 다시 말해 공직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지위를 국민을 지배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본인은 물론 그 사회와 국가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김동규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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