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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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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892) 제16화 사랑이 흐르는 강 42

‘인생이 허망해’

  • 기사입력 : 2016-07-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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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죽음은 여러 날이 지난 뒤에도 자주 이미숙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을 하다가도 떠오르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나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무심히 내다보다가도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고는 했다.

    ‘이제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

    이미숙은 그럴 때마다 고개를 흔들면서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죽으면서 그에 대한 미움은 모두 사라지고 측은지심만 남고 있었다. 회사에서 실직만 하지 않았다면, 아니 도박만 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도 수렁으로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왜 도박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일까.

    ‘인생이 허망해.’

    남편은 아직도 젊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흔세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인생이 너무 빨리 끝난 것이다. 그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나도 죽으면 먼지처럼 사라지겠지.’

    이미숙은 남편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우울해졌다. 아이들의 얼굴도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고 전처럼 웃고 떠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조은영이 옆에 와서 물었다.

    “인생이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모르겠어요.”

    이미숙은 조은영을 향해 엷게 웃었다.

    “교회에 다니세요. 그럼 위안이 될 거예요.”

    “그럴게요.”

    조은영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데 이미숙에게 교회에 다니라고 계속 권하고 있었다. 오후 2시쯤이 되자 자동차판매 대리점에서 전화가 왔다. 이미숙은 자동차판매 대리점으로 가서 서류에 사인을 하고 계약금을 지불한 뒤에 차를 운전하여 가게로 돌아왔다. 새 차라 시승감이 좋고 쾌적했다.

    “회색이라 점잖구나.”

    어머니가 차를 보고 좋아했다. 방학중인 아이들도 차를 구경하러 나왔다.

    이미숙은 어머니를 태우고 영종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학원 때문에 같이 드라이브를 할 수 없었다. 공항고속도로로 나서자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이미숙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지열이 뜨거웠으나 새 차는 에어컨도 시원했다. 영종도 옆의 작은 해수욕장 을왕리는 한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을왕리 해수욕장은 피크를 맞이하여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을왕리에서 차를 주차시키고 물었다.

    “나는 아무 거나 괜찮아.”

    차도까지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도 먹고 싶은 거 있을 거 아니에요?”

    젊은 여자들은 거의 알몸으로 다니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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