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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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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 기사입력 : 2016-07-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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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 냄새 나네

    ☞ 아, 시골집 한 그릇! 나 또한 한 그릇 시골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두 아름 넘는 무화과나무가 장독대를 가리고, 별이 개구리 울음소리만큼 쏟아지던 시골집. 흙 마당에 불 피우고 솥뚜껑 뒤집어 어머니 지짐이 부쳐 주시던 시골집. 씨암탉이 병아리들 한 줄로 끌고 다니던 시골집….

    시인 또한 한 그릇 시골집에서 태어났으리라. 자라 시인이 되었고, 언어의 숟가락으로 시골집 한 그릇에 가득 담긴 추억과 욕창을 앓던 세월과 멍든 구름을 퍼서, 시의 그릇에 옮겨 담았으리라.

    시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이 되고 싶어진다.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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