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 기사입력 : 2016-07-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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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 냄새 나네
☞ 아, 시골집 한 그릇! 나 또한 한 그릇 시골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두 아름 넘는 무화과나무가 장독대를 가리고, 별이 개구리 울음소리만큼 쏟아지던 시골집. 흙 마당에 불 피우고 솥뚜껑 뒤집어 어머니 지짐이 부쳐 주시던 시골집. 씨암탉이 병아리들 한 줄로 끌고 다니던 시골집….
시인 또한 한 그릇 시골집에서 태어났으리라. 자라 시인이 되었고, 언어의 숟가락으로 시골집 한 그릇에 가득 담긴 추억과 욕창을 앓던 세월과 멍든 구름을 퍼서, 시의 그릇에 옮겨 담았으리라.
시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이 되고 싶어진다. 이중도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