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 기사입력 : 2016-08-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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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 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새악시 볼에 떠 오는 부끄럼,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 고향의 풍경이다. 이런 고향을 가진 사람은 하늘을 우러르며 산다. 몸은 도시와 생계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늘 하늘을 바라보고 산다. 새싹 파릇하게 돋아나는 고운 봄길에 서서 홀로 바라보는 하늘은 연못이다. 이미 떠나간 혈육들이, 이미 떠난 동무들이, 이미 흘러간 시간이 고스란히 고여 있는 잔잔한 연못이다. 이 연못에서 살포시 젖은 ‘시의 가슴’. 이 가슴 젖은 시는 어쩌면 ‘시의 고향’이 아닐까? 도심의 전봇대에 얽혀 있는 거미줄처럼 어지러운 요즘의 시들이 한 번쯤 돌아가 보아야 할 고향이 아닐까? 이중도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